직장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두 글자 ‘휴가’, 그 달콤한 자유의 시간이 집중된 계절이 바로 7~8월이다. 일에 치이고, 상사에 눌려 ‘도비(해리포터 속 노예 캐릭터)’의 삶을 살아온 우리에게도 드디어 “이제 자유에요”라고 외칠 수 있는, ‘퇴장 시간 정해진 천국’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 천국행 티켓, 과연 모두가 온전히 사용하고는 있을까. 이번 주 ‘일당백’은 세계 직장인들의 말 많고, 탈 많은 휴가 이야기를 살펴본다.
휴가 일수 제일 적고, 있어도 잘 못써…의외의 ‘이 나라’
여행 사이트 ‘익스피디아’는 매년 전 세계 직장인을 대상으로 ‘유급휴가 사용 현황’을 조사한다. 올 6월 발표된 24번째 보고서를 보면 ‘에이, 설마’라는 반응이 나올법한 결과가 눈길을 끈다. 바로 ‘자유의 나라’ 미국 직장인들이 다른 나라보다 적은 유급 휴일을 받고, 이마저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연간 단 12일의 휴가를 받는다. 이는 올해 조사 국가 중 가장 적은 수치다. 익스피디아는 “지난 24년간 전 세계의 휴가 사용 트렌드를 분석해왔는데, 미국인의 휴가 부족감(충분한 휴식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상태)이 현재 11년 만에 최고 수준인 65%에 도달했다”며 “반면,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는 이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미국 응답자 절반(53%)은 주어진 휴가를 모두 사용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경향은 지난해 사용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각국의 지난해 휴가 일수와 미사용 일수를 분석한 결과 미국과 일본 직장인들은 주어진 휴가 일수가 가장 적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소진하지 않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12일, 19일의 휴가를 받아 8일, 7일을 쓰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27~31일의 휴가를 받아 단 이틀만 남긴 영국, 독일, 프랑스 등과는 대조적이다. 일본이 미국과 비슷한 상황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게 익스피디아의 분석이다. 일본의 경우 공휴일이나 회사 휴일을 활용해 자주 짧은 휴가를 계획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통해 휴일에 붙여 월 단위로 유급 휴가를 소진, 재충전할 시간을 확보한다. 연간 휴가 일수로는 미국과 일본이 단 하루 차이지만, 일본 근로자들은 미국에 비해 월별 휴가를 사용할 가능성이 7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는 주어진 휴가 일수가 많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장기 여행’보다 휴가를 균등하게 분산해 연중 소진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30%)이 많았다. 반면, 미국인 5명 중 1명(19%)은 지난해 ‘큰 여행(big trip)’을 위해 휴가를 아껴두다 결국 사용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은 한 달에 가까운 유급 휴가를 받으면서도 ‘휴가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비율에 있어 프랑스(69%)가 미국(65%)보다 높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프랑스인들이 압도적으로 휴가를 기본 권리로 여기고(93%·미국 83%), 전반적인 건강과 웰빙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다음 휴가까지의 공백 기간’에 대한 질문에는 전 세계 응답자의 46%가 ‘6개월 이상’이라고 답한 가운데 28%는 ‘1년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익스피디아의 연례 조사는 미국, 영국, 캐나다, 멕시코, 프랑스, 독일, 호주, 뉴질랜드, 일본, 홍콩, 싱가포르에서 1만 1580명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형태로 진행했다.
그래서 등장한 ‘조용한 휴가’
그렇다고 미국의 모든 직장인이 “휴가 일수도 적은데, 이마저도 다 못 쓰는” 딱한 사연의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일부 직장인들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소개한 ‘조용한 휴가(Quiet Vacation)’다. 조용한 휴가란 공식적으로 휴가를 신청하지 않고, 원격 근무를 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미니 휴가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시장조사기관 해리스 폴이 최근 미국 직장인 1200명에게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4분의 1 이상이 허가받지 않은 휴가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WSJ도 이런 현상의 배경으로 미국의 열악한 휴가 문화를 꼽았다. 미국 노동부 통계를 보면 민간 부문 근로자들은 평균적으로 1년 근무 후 11일, 5년 근무 후 15일의 유급 휴가를 받는다. 5명 중 1명은 아예 유급 휴가 자체가 없다. 해리스폴 조사에서도 근로자의 80%가 주어진 휴가를 모두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용한 휴가를 즐기는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다. 한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22세 직원은 뉴저지의 해변 호텔에서 오전 중 몇 개의 회의와 조사 업무를 한 뒤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또 다른 37세 시카고 직장인은 상사 모르게 남편, 친구들과 라스베이거스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보장되지 않은 휴식을 보는 시선은 나뉜다. 컨설팅 회사 콘페리의 디팔리 비야스는 “조용한 휴가는 진정한 휴식도 얻지 못하고, 생산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들킬 위험도 있다”며 “실제로 일부 관리자들은 팀원들의 아웃풋이 평소보다 30% 정도 줄어들 때 ‘조용한 휴가’를 의심한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일과 여행을 결합할 때 오히려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며 조용한 휴가를 옹호하는 입장도 적지 않다.
휴가를 떠나도, 회사와 연결된 사람들
떠났다고 떠난 게 아닐 수도 있다. 휴가 때 회사와 완전히 연결을 끊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소개하는 것은 주로 고위 임원들의 사례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CEO 리치 핸들러는 휴가 중에도 업무상 중요한 결정을 하곤 한다. 그는 “휴가 때는 오히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 큰 그림을 보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휴식 중에도 열 일 하는 상사라니. 고위 임원일수록 현실적으로 완전한 업무 단절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런 행동이 오히려 조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도 많다. 휴가 중 윗사람의 업무 계속이 어떤 방식으로든 아랫사람(?) 입장에선 불필요하고 과도한 간섭으로 여겨져 팀원 간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내 팀이 나 없이는 기능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무례하다”는 비판도 있다. 전문가들은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사전 계획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일정과 업무 흐름을 미리 조정하고, 연락 시기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휴식을
세계 직장인들의 말 많고 탈 많은 휴가 이야기는 결국 ‘정답은 없다’는 걸 말해준다. 휴가 일수 많아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아쉬워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절대적인 일수가 적어도 주말 붙여 쪼개 쓰며 소확행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던가 ‘조용한 휴가’, ‘휴가 중 업무’에 대한 평가 역시 휴식과 업무에 대한 개인의 가치 판단에 따라 갈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 휴가는 직장인에게 단순한 ‘쉼표’가 아닌 ‘더 나은 삶과 일을 위한 활력’을 기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익스피디아 조사에서 85%의 응답자는 “휴가 후 더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고 답했다. 회사 복귀 후 하루, 아니 1시간도 채 안 돼 사라질 수 있는 마음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에겐 그 자리 채울, ‘다음 휴가’라는 새로운 낙(樂)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