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쯤이었다. 필자는 부산현대미술관 착공 당시 “현재 운영 중인 부산시립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미술관을 짓는다는 것은 잘못”이란 지적을 한 바 있다. 10여 년이 지나 퐁피두 부산을 유치하려는 지금도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향후 퐁피두 부산의 건설과 운영 그리고 로열티 등을 추론해보면 건축비 약 1000억원, 연간 운영비 200억 원, 로열티 30~50억 원이 예상된다. 연간 250억원을 부산시립미술관과 부산현대미술관에 배정하거나, 아니면 부산시립미술관에 집중하고 부산현대미술관을 소장품 없이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을 전시만 하는 쿤스트할레(Kunsthalle)로 전환하는 것도 ‘선택과 집중’이란 면에서 충분히 부산을 문화예술, 미술의 도시로 만들 수 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 소장품 구입예산은 국립현대미술관 47억 원(미술은행 제외), 서울시립 14억여 원, 대구 20억 원, 후발주자인 울산시립이 28억, 광주시립 7억 원, 대전시립 3억 원, 부산시립은 5억 원에 불과했다. 건축비 1000억이면 1억짜리 작품 1000점을 소장할 수 있는 금액이다. 연간 100억씩 10년간 동시대 미술을 표상하는 특정유형의 작품을 수집하면, 10년 안에 모두 부러워할 컬렉션을 지닌 세계적인 미술관이 될 수 있다.
부산시는 그간 기존의 미술관을 집만 지어놓고, 비가 새도 내버려 두고, 미술관을 가로막는 벡스코 증축에 나 몰라라 하더니, 개관 후 10년이 지나서 거금 430억을 투입해 보수공사를 시작한 마당에, 갑자기 1000억 원 이상을 들여 건물을 짓고 매년 30억 원 가까이 로열티를 내는 퐁피두를 유치한다고 한다. 지금의 부산시립이나 부산 현대미술관이 ‘찬밥’ ‘콩쥐’ 신세가 될까 걱정이다. 따라서 퐁피두 부산관 유치를 검토하기 전에 최소한 현재의 부산시립과 부산 현대미술관을 어떻게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키워나갈지, 우리 브랜드의 미술관 육성과 프랜차이즈미술관 유치가 중·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이며, 시민과 대한민국에 이익이 될지 충분히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
프랜차이즈 미술관의 한계는 로열티 외에도 또 있다. 퐁피두 부산의 경우, 세계 유수의 다른 미술관 소장품 전시는 불가능하다. 사실 서양 근현대 미술품 소장이 빈약한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의 미술관은 세상의 모든 미술관과 협의해 작품을 대여(Loan)해 소위 블록버스터(Blobuster)라 불리는 대형 전시를 기획해 왔다.
이런 전시를 그간 부산시립이나 부산현대미술관 등 우리나라 미술관이 할 줄 몰라, 미술관 구성원들 역량이 모자라 안 한 것이 아니다. 예산이 없고, 항온 항습 등 시설 미비로 못한 것이다. 예산과 시설이 갖추어진다면 세계 어느 미술관이든, 개인·기관의 컬렉션까지도 대여해 전시할 수 있다. 루브르, 프라도, 라익스, 에르미타주, 모마, 메트(MET)는 물론 고흐, 피카소,샤갈, 레제 미술관의 소장품을 우리 소장작품처럼 임차해 전시할 수 있다. 퐁피두도 물론 그들 중 하나이다.
이렇게 우리 브랜드를 가진 미술관의 활동영역과 교류대상의 폭이 넓은데, 굳이 퐁피두에 한정시켜 미술관의 활동을 제한하려는지 모르겠다. 얼추 짐작 컨 대 미술관 명칭 사용 대가로 내야 할 30억이면 연간 2건의 이러한 대형 전시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정미술관의 분관이란 한계보다는 미술관 전시 확장성을 위해 자기 브랜드를 가진 ‘우리 미술관’이 더욱 유리하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게다가 퐁피두의 프랜차이즈 사업이 대략 5년 단위로 갱신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고려대상이다. 지금까지 많은 도시가 퐁피두 분관유치를 시도했지만 바로 계약갱신이란 고비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5년 뒤 예상을 넘어서는 로열티를 요구할 경우 브랜드 유지를 위해 지불하고, 시간이 갈수록 증가할 고액의 로열티 그리고 이를 거부할 경우 프랜차이즈라는 온실에서 나와야 하는 부담, 즉 프랜차이즈 기간 중 지출한 비용과 들인 공을 노력과 비용은 소멸 되고, 새롭게 우리 브랜드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은 우리의 선택이 어떠해야 할지 알려주는 핵심이다.
대한민국이 가면 길이 된다.
우리는 유럽이나 서구의 제도나 시스템에 ‘선진’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추앙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우리 근대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와 다른 조건과 환경 때문에 만들어진 그들의 시스템이, 토양이 다른 우리의 역사나 경제상황에서도 적응할지는 의문이다. 잘 자란다고 한대지방 나무를 열대지방에 옮겨놓으면 고사하고 말 듯이 그간 우리는 벤치 마킹이란 시행착오를 참 많이도 해왔다.
이런 시행착오를 피하려면 최소한 ‘박물관학’(museology)이라는 학문적 입장에서 미술관의 개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사안을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빌바오의 성공이 곧 우리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 글로벌 퐁피두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유치한 어느 도시도 빌바오처럼 떠들썩한 성공을 거둔 예는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미국 뉴저지에서 퐁피두 분관을 유치했다가 이를 번복한 사례도 우리의 반면교사가 되기 충분하다. 부산시가 계획하는 퐁피두 부산의 전시장 3분의 1 크기인 연면적 5388㎡(1628평)의 규모로 기존 건물을 증·개축해서 2024년 개관예정이었던 뉴저지 분관은 경제적 문제에 직면해 결국 취소됐다. 특히 2400만 달러(약 330억원)의 사업비를 시의회가 철회해 무위로 돌아갔다, 시와 주 정부는 기존 건물의 증·개축 비용 1억 7600만 달러(약 2423억 원)의 건설 비용은 예산으로 지원하기로 했지만, 시가 로열티를 포함한 연간 운영 예산 1900만 달러(약 262억원)를 입장료와 시설임대, 기부금과 현물기부로 충당할 수 있다고 자신한 반면 주 정부는 이를 매년 발생할 적자로 간주하면서 자금 지원계획을 부결시켰다.
성공사례로 거론되는 빌바오 구겐하임에 대한 빌바오 시민들의 부정적 의견도 참고할 만하다. 우선 구겐하임 재단에 내는 로열티가 지역민들에게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준다는 주장이다. 일부 주민은 비용이 편익보다 크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술관의 성공과 관광 수익을 고려할 때, 미술관의 재정적 이익을 더 공평하게 분배할 것을 요구한다. 또 빌바오와 구겐하임 재단 간의 계약이 불공정하다는 인식도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재협상을 하거나, 구겐하임과 계약을 연장하지 말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2014년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SRGF) 이사회는 구겐하임 빌바오에 대한 계약갱신을 승인해 획기적으로 2034년까지 계약을 20년 연장했다. 새로운 계약에서 구겐하임은 2년마다 6개월간 구겐하임 컬렉션으로 구성하는 전시를 기획하며, 뉴욕에 새로운 큐레이터를 고용하고, 바스크 지방의 엄선된 학생 그룹이 뉴욕 구겐하임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매년 바스크 지방의 2명의 젊은 예술가를 뉴욕 레지던시에 초청한다는 내용을 추가해 빌바오 시민들을 달랬지만 시민의 불만은 여전하다.
문화예술의 도시를 향한 부산시의 열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우리도 이제 스스로 후진국의 함정에서 나와 서구와 당당하게 마주할 필요가 있다. 유럽은 언제까지 선진국이고 우리가 배워야 할 대상일까? 왜 나의 자신감보다 외국인들의 시선이 중요할까? 언제까지 후진국 콤플렉스 때문에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해야 할까? 역사 속에 트라우마처럼 남은 서구 열강에 대한 열등감, 근대 이후 한국인들이 기억하는 한국은 잘 나가는 선진국들에 비해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초라한 후진국이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K-컬처, K-팝이나 K-영화, 드라마와 같이 우리의 문화예술 브랜드 즉 K-MUSEUM을 만들어 보자. 우리가 기술과 혁신적 디자인, 가격과 제품의 차별화, 마케팅 역량 강화, 고객 중심의 집중화를 통해 우리 브랜드를 만들고 가꾸어 세계시장에 우뚝 선 우리 브랜드를 떠 올려보자. 우리가 오늘의 10대 수출국으로 서구에 우위를 확보하고 추월이 가능했던 것처럼 우리도 퐁피두를 능가하는 우리 브랜드를 가진 미술관 박물관을 한번 만들어 보자. 쿠쿠가 코끼리를 이겼듯 말이다.
(편집자주:퐁피두와 우리 브랜드 미술관 만들기①②에서 이어져 ③으로 마무리합니다.)
▶▶필자 정준모는 미술평론가이자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KAAAI) 대표다. 동숭아트센터와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로 시작해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과 전시부장을 맡았다. 이후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의 최장수 학예실장을 역임하며 근현대미술의 중요한 전시들을 기획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시 공예박물관 등 국내 여러 미술관 및 문화기관 설립에 중추적 역할을 한 행정가이기도 하다. 현재는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로서 미술품 감정및 미술비평, 저술활동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