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신재생에너지 정산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기존 사업자와 신규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려 법 개정 같은 공론화 과정에서 험로가 예상된다. 정부는 한전이 독박을 써온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RPS) 제도를 경매제로 전환하는 동시에 수요·공급자 간 직접 전력구매계약(PPA) 중심의 자발적 거래 시장을 조성해 한전 등 공기업의 재무 부담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신규 제도는 태양광 발전사업자가 과도한 이익을 수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아직 자발적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아 저리 융자 등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4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한전은 전기요금에 기후환경요금 항목을 신설한 2021년 이후 매년 3조 원 이상, 누적 10조 원 이상을 RPS 구매 비용으로 지출했다. 올해는 한전의 RPS 구매 비용이 사상 처음으로 4조 원을 돌파한 4조 1000억 원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RPS란 500㎿(메가와트) 이상 발전설비를 보유한 발전사(공급의무자)가 발전량 일부를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총 27개 기관의 올해 의무공급량은 지난해보다 1.61% 늘어난 6381만 9293㎿h로 제도 도입 이후 증가율이 가장 낮았다. 무리한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한전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킨 원인이 됐다는 지적에 감속 페달을 밟은 것이다. 발전 업계 관계자는 “발전사가 사들인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비용을 한전 측이 보전해주고 이를 기후환경요금을 통해 메꾸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신재생에너지의 양적 확대가 아닌 질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매년 필요한 신재생에너지 규모를 정한 뒤 최저가를 써낸 사업자들의 전기만 사주는 입찰 경매제로 개편하기로 했다.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 주요 선진국처럼 RPS 제도를 철폐하기로 한 셈이다. 다만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존 영세 태양광 사업자들은 시장에서 강제로 퇴출당할 판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이와 더불어 PPA 요금정산 다양화, 사전신고 기한 완화, 초과발전량 재판매 허용 등 관련 규제를 풀어주기로 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민간 주도의 신재생에너지 거래장터 구축도 뒷받침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민간 기업이 RE100 이행 수단과 관련 직접 PPA 활성화를 선호하면서 제도가 바뀌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직접 PPA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대한상공회의소 등에 따르면 직접 PPA 누적 계약 건수는 20여 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신재생에너지 거래 촉진을 위한 저리 융자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규종 대한상의 그린에너지지원센터장은 “2021년 4월 전기사업법 개정으로 생산자와 사용자 간 직거래가 허용됐지만, 여전히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면서 “제도 안착을 위한 정부의 금융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승완 충남대 교수 역시 “가장 확실한 직접 PPA 육성책은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가 내려가는 것”이라며 “고금리 시기 이자 부담을 정책자금 지원으로 덜어줘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