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놀이터에서 사소한 싸움만 붙어도 바로 117에 신고하죠. 초등학생들은 112보다 117을 더 먼저 배우는 수준이에요.” (40대 학부모 이 모 씨)
매년 학교폭력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늘어나는 가운데 교사들이 117 학교폭력 신고센터에 직접 신고하는 비율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교사도 경찰이 운영하는 117 센터를 이용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를 도입했지만 학교폭력 처리를 접하는 교사들의 압박을 줄이기 위해서는 제도 안착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서울경제신문이 경찰청으로부터 제공받은 ‘117 학교폭력 신고센터 운영 현황’에 따르면 2019년 3.1%에 불과하던 교사 신고 비율은 올 5월 11.2%로 약 3.6배 증가했다. 교사 신고 비율은 2020년 4.0%→2021년 5.0%→2022년 6.4%→2023년 8.8%로 꾸준히 증가하다가 올해 들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부모 등 가족 신고 비율도 2019년 21.3%에서 올해 5월까지 29.1%를 기록해 약 8%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2019년 63.1%를 기록해 과반수를 넘겼던 본인 신고 비율은 올 5월까지 54.6%를 기록하며 크게 줄었다. 친구·목격자도 비율이 줄었다. 아이들의 신고보다는 학교폭력을 접한 어른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주로 늘어난 셈이다.
학교폭력 전체 신고도 늘고 있다. 경찰청과 교육부가 협력해 진행 중인 117 센터 사업은 학교폭력 외에도 가정폭력·아동학대, 성폭력·성매매에 대한 신고도 접수한다. 주목할 점은 코로나19 이후 줄었던 학교폭력 사건 비율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폭력 신고 비율은 2020년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55.4%로 급락한 뒤 이듬해부터 다시 증가하더니 지난해에는 67.2%, 올해 5월까지 68.3%를 기록하면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66.8%를 뛰어넘었다.
학교폭력을 접한 교사들은 담당교사를 통해 학교폭력 사안을 접수할 수 있다. 117 센터에 접수된 신고도 인지 즉시 사실확인을 위해 학교로 되돌아와 동일한 조치를 받는다. 그럼에도 117 센터를 통한 신고 비율이 늘어난 데 대해 교사들은 사안 처리의 부담을 든다.
학교폭력 사안 처리는 교사들의 ‘기피 1순위’로 꼽힌다. 그 절차와 결과를 두고 학부모에게 고소당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6월에는 인천의 한 학교폭력 담당교사가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의 부모인 프로야구 구단 현역 코치에게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학교폭력을 인지한 뒤 수사기관에 신고함으로써 학교폭력 사안 처리를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리송한 학교폭력의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해 117 센터가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상담을 이용하려는 이들도 있다.
늘어나는 교내 성범죄의 영향도 거론됐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생활지도 담당 교사 A 씨는 “교내 성문제 사안의 경우 무조건 117에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그 영향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사의 업무 부담을 낮추기 위해 올해 3월부터 사안 조사를 퇴직 경찰관 등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이 맡는 제도가 신설됐다. 그러나 여전히 “업무 경감이 크지 않다”며 부담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크다. A 교사는 “교사들의 업무 본질은 학생들이 싸우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인데 현행 학교폭력 시스템은 행정 처리에 방점이 찍히게 돼 피로도가 높다”고 말했다. 전담 조사관이 교사 대신 학교폭력 사안 조사·보고서 작성을 맡게 됐지만 학부모와 조사관의 일정 조율은 교사들이 맡아 새로운 업무가 되레 늘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시행 6개월 차로 접어든 학폭 조사관 제도를 발전시키기 위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경기도 학교폭력전담 장학사로 근무했던 최우성 다산고 교장은 “신설된 조사관들을 짧은 시간에 위촉한 뒤 1~2주가량의 역량강화 연수를 진행했기 때문에 맹점이 있을 수 있다”면서 “연수 횟수를 늘리고 한 건당 15만 원에 불과한 수당을 현실화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면 취지에 맞게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