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열린 경축식이 끝내 반쪽으로 치러졌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인선을 둘러싼 갈등으로 야권과 광복회 등 일부 독립운동 단체가 정부 경축식에 불참하고 자체 기념식을 진행하면서다. 입법부 수장인 우원식 국회의장마저 경축식에 불참하며 사상 초유의 분열상이 펼쳐졌음에도 국민의힘은 야당을 향해 ‘친일 선동’, 더불어민주당은 정부를 ‘친일 매국 정권’이라 비판하며 정쟁만 이어갔다.
정부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 광복절 공식 경축식은 광복회와 야권 인사들이 불참한 채 열렸다. 광복회가 정부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1965년 창립 이후 처음이다. ‘친일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에 휩싸인 김 관장 임명에 항의하는 차원이다. 정치권에서도 여당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지도부를 비롯해 의원 50여 명이 자리했지만 야권에서는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만 참석했다. 특히 민주당 출신인 우 의장도 고심 끝에 불참했다. 입법부 수장이자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경축식에 빠진 경우는 박병석 전 의장이 2021년 순방과 겹쳐 부득이하게 불참한 사례 외에는 없다.
광복회는 같은 시각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독립운동단체연합과 함께 자체 기념식을 열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 6당 100여 명도 정부 경축식 대신 이 자리에 참석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친일 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 인식들이 판치며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독립운동 후손들은 결코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역사 의식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결기를 보여줘야 했다”고 정부 공식 행사에 불참한 배경을 설명했다.
2개의 광복절 행사가 열린 초유의 사태를 두고 여야는 ‘네 탓 공방’을 벌였다. 정부 여당은 야당의 불참이 정치적 선동이라는 입장이다. 한 대표는 경축식에 참석한 뒤 “불참을 하면서 마치 나라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너무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한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야당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적 선동에 여념이 없다”고 직격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특정 단체가 인사 불만을 핑계로 빠졌다고 해서 광복절 행사가 훼손된다고 보지 않는다”며 “광복절에 ‘친일 프레임’을 덧씌우고 이를 틈타 국민 분열을 꽤하는 정치권의 행태 역시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야당은 ‘친일 정권’ 프레임을 거듭 부각하며 공세에 나섰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기념식에서 “김 관장 임명에 대해 애국 보수 단체들도 반대하는 상황”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이렇게 국민을 분열시키고 역사 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인가, 아니면 조선총독부 제10대 총독인가”라며 “친일 밀정 정권 축출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주당·혁신당·진보당 의원 5명은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방일단을 꾸리고 이날 일본으로 출국하기도 했다. 이들은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7일까지 일본 측의 유관 정부 기관을 방문해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할 것”이라며 “또 사도광산 현장을 방문해 일본 정부가 왜곡하고 있는 역사 현장을 확인하고 문제시되는 전시장 이전과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명단 공개를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복절 이후에도 여야 간 대치는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친일·반민족 윤석열 정권 규탄 성명’을 내고 당내 ‘윤석열 정권 역사 쿠데타 저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면서 “시민사회와 함께 범국민적 저항운동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간토 대학살 사건 피해자 특별법 △친일 반민족 행위자 지원 배제 국가유공자법 △위안부피해자법 등 입법 추진도 공언한 상태다.
한편 이날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광복절을 맞아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자유통일당이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인근에서 연 ‘8·15 국민혁명대회’에는 주최 측 추산 5만여 명(경찰 추산 2만여 명)이 참석했다. 또 천만인운동본부는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국본과 경기도의사회는 중구 대한문 인근에서 광복절을 기념하는 집회를 연 뒤 종로·을지로 일대를 행진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집회 행진 구간에 교통경찰 200여 명과 구급차 3대를 배치해 사고와 온열질환에 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