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하는 범정부 훈련인 을지연습 기간에 주요 기관장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잇달아 예고되자 훈련 차질에 대한 우려와 함께 ‘맹탕 청문회’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야당 주도의 각종 청문회가 진실 규명이 아닌 막말 공방으로 흐르면서 ‘청문회 무용론’에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국회는 19~22일 나흘간 실시되는 을지연습 중 야당 주도로 △법제사법위(19일) △행정안전위(20일) △과학기술방송통신위(21일)에서 청문회를 차례로 개최한다. 법사위에서는 김영철 검사 탄핵소추안 조사 청문회의 일환으로 서울구치소 현장 검증에 나서고 행정안전위에서는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관련 청문회가 열린다. 과방위에서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관련 3차 청문회를 이어간다.
하지만 전시·사변과 같은 국가비상사태를 상정해 연 1회 각 행정기관의 대비 태세를 점검하는 와중에 이번 훈련을 각 부처에서 지휘할 인사들을 국회로 부르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국내 치안의 총책임자인 조지호 신임 경찰청장을 비롯해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 고광효 관세청장,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 등이 야당 주도 아래 대거 증인으로 채택됐다.
배준영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입장문에서 “회의 개최에 따른 자료 요구 대응, 회의 준비, 점검 등 국회 출석을 위해서는 최소 1~2주 전부터 사실상 기관 내 모든 조직이 동원되기 때문에 을지연습 대비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을지연습의 핵심 기관장과 주요 간부들이 국회로 출석한 가운데 을지연습이 제대로 실시될 수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국가 총력전인 을지연습을 정부와 국회가 온전히 동참할 수 있도록 일방적인 청문회를 열지 말아 달라”며 “이제 국민이 외면하는 청문회라는 간판을 단 ‘국회판 막장 드라마’는 종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22대 국회 출범 이후 지금까지 각종 입법·현안 청문회만 총 12차례 개최됐지만 상당수 회의에서 여야가 상대편에 대한 흠집 내기에만 몰두해 “청문회가 정쟁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달 14일 법사위에서 열린 김영철 검사 탄핵소추안 조사 청문회에서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김건희 살인자’ 발언을 하며 여야 공방전이 극도로 격화한 바 있다. 21대 국회에서 입법·현안 청문회가 4년 임기를 통틀어 단 5차례 개최된 것을 고려하면 정쟁을 위한 청문회만 남발돼 ‘진실 규명’이라는 국회 청문회의 본취지가 크게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