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공시를 도입한 지 석달이 다 된 가운데 금융 당국이 제조 상장사들의 공시 계획을 본격적으로 점검하고 나섰다. 밸류업 공시 참여 기업이 은행·증권 등 금융권으로만 쏠리면서 증시 부양 효과가 제한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 등은 최근 국내 주요 상장사 대상으로 밸류업 공시 계획을 점검하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12일 현대차, LG,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 유한양행 등 아직 밸류업 공시를 내지 않은 대기업들을 모아 공개적으로 참여를 요청한 데 이어 구체적인 일정을 실무적으로도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 당국이 주요 제조 기업들의 밸류업 공시 계획을 들여다보고 나선 것은 전체 상장사의 참여율 자체도 저조한 상태에서 금융 등 일부 업종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2587개 사(코스피 844개 사·코스닥 1743개 사) 가운데 지금까지 밸류업 계획(예고 공시 포함)을 공시한 기업은 15개 사(0.58%)에 불과하다. 5월 27일 KB금융을 시작으로 밸류업 공시를 낸 기업 15곳 가운데 9곳이 금융지주사나 은행·증권사다.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 50위권 이내 상장사 중에서는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메리츠금융지주 등 금융지주사 4곳만 밸류업 공시를 냈다. 금융 당국의 직접적인 감시·규제 범위에 있는 업종만 밸류업 프로그램에 발 빠르게 대응한 셈이다.
당국은 밸류업 공시 참여가 아무리 자율성을 띤다 해도 특정 업종만 계속 참여하게 되면 해당 프로그램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국내 증시에서 시총 30%를 차지하는 삼성그룹과 SK그룹이 참여하지 않으면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한 주가 상승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공시 우수 기업을 선정해 코리아 밸류업 상장지수펀드(ETF)에 포함하는 등의 인센티브 정책 효과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8일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밸류업 자율 공시에 적극 참여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당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일부 제조 기업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상반기 결산을 끝낸 지도 얼마 되지 않은 데다 9~10월이 돼야 내년도 경영 계획을 세울 수 있어 빠르게 공시하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4분기부터 밸류업 공시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제조업 밸류업 공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