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파리 올림픽이 주는 교훈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

한국, 젊은피 맹활약에 종합 8위

국가주의 체육서 개인 성취 중시

이민 선수 늘며 소속의식도 약화

낡은 집착 대신 미래세대 믿어야





젊은 피, 신세대들이 주축이 돼 일궈낸 파리 올림픽 종합 8위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총·칼·활 분야 선수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메달의 대부분이 개인의 실력이 중요한 분야에서 나왔다. 선수의 신체 조건도 세계와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었다. 확실히 우리도 경제 선진국의 초입에 진입했다고 느꼈다. 파리 올림픽은 미래를 지향해야 할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줬다.

역시 경제력의 중요성이다. 상위 15위 국가 대부분이 이미 전통 산업화는 완성한 총량 경제 규모 면에서 15위권 이내의 경제 대국들이다. 1인당 국민소득 면에서도 중국(1만 2500달러), 헝가리(2만 2200달러), 우즈베키스탄(2500달러)을 제외하고는 평균 5만 달러의 선진권 국가들이다.



인구 대국이 꼭 스포츠 강국은 아니다. 인구 1억 명 이상 국가는 중국·미국·일본 3개국에 불과했다. 특히 중국·일본·한국이 각각 2·3·8위를 차지해 아시아의 스포츠 위상도 경제적 발전과 함께 확고해졌다. 71위에 그쳤지만 인구 규모로 세계 1위면서 경제 규모로 세계 5위인 인도의 경제 발전이 가속된다면 범아시아권의 스포츠 위상이 조만간 훨씬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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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올림픽 운영의 새로운 개념이다. 기존의 올림픽은 체제 우월 경쟁이나 경제 발전의 전환점을 이뤄내기 위한 이벤트로 추진된 경우가 많았다. 1964년 도쿄, 1988년 서울, 2008년 베이징이 그랬다. 올림픽 주경기장 신축 등 유관 인프라를 단시간 내 구축하고 세계에 그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 보편화돼 있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의 웅장함이 주였다. 세계 도처에서 올림픽이나 심지어 월드컵 개최를 위해 신축한 시설물이 휑하니 방치되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 프랑스는 기존 시설을 활용해 세계적 이벤트를 소화해냈을 뿐 아니라 문화를 한껏 뽐냄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줬다. 세계적 도시로서 이미 꽉 짜여 있는 데다 문화유산이 풍부해 활용할 여지가 충분했다.

특히 지금의 세계는 결핍의 사회가 아닌 풍요의 사회로 ‘활용’과 ‘연계’가 중요하다. 국력의 핵심이 문화 등 소프트웨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우리도 평소 건축물 하나를 짓더라도 문화를 입히고 미관영향평가도 적극 도입해야 할 이유다. 내년 11월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2036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추진한다고도 한다. 전통문화 유산이 취약한 상태라 꼭 참고해야 할 방향성이다. 이벤트는 반짝하는 일과성이 아니라 평소의 연장이다.

각국의 메달 경쟁이 개인의 자율에 의한 자기 극복의 경쟁으로 옮아가고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나 저개발 국가들은 한때 상당한 기간 국가주의로 체육을 육성했다. 국가가 전면에 나서 유망주를 조기에 선발하고 육성해 메달 선수를 영웅으로 대접하고는 했었다. 우리도 병역 면제, 연금 지급이 있다. 스포츠 강국인 러시아가 빠져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메달 1·2위를 한 미국이나 중국이 육상·수영 등 개인의 성취 경쟁을 중시하고 있었다. 논란이 되는 우리의 선수와 협회 관계 재구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하나가 국적의 문제였다. 원출신지가 아닌 이민 국가의 선수로 뛰는 경우가 속출했다. 탁구 종목에서 두드러지고 있었다. 중국 대륙 출신 선수들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국적을 바꿔 달고 뛰었다. 여자 골프도 교포 출신으로 뉴질랜드 대표로 참가해 금메달을 딴 리디아 고가 있었다. 개인의 성취를 위해 그만큼 국가 소속 의식이 약화되고 있다. 스포츠 영역이 비교적 탈정치적이라는 한계는 있다. 지금의 국제 정세와는 상반되지만 스포츠 분야에서도 세기적 대전환(paradigm shift)이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해방이나 건국의 시점 논쟁, 친일파 논쟁도 과거의 사고에만 갇혀 있는 구세대의 부질없는 집착으로 비쳐질 수 있다. 미래 세대를 믿고 더 기회를 주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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