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데이터가 변하는 것에 따라 매파 또는 비둘기파가 될 것입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후보자 시절부터 강조한 통화정책의 원칙은 ‘데이터’에 있었다. 통화정책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경제 전망을 세밀하게 제시하면서 시장에 합리적인 기대를 형성시키겠다는 의도다. 한은이 이달부터 한국 경제 전망을 반기에서 분기로 나눈 것도 ‘K점도표’에 이은 정책 투명성 강화의 일환이다. 이 총재는 2022년 11월 금융통화위원회부터 ‘최종금리 3.5% 3명, 3.25% 1명, 3.75% 이상 2명’ 등 한국식 점도표를 도입한 바 있다. 2월 포워드 가이던스에서는 동결 일색의 전망에서 ‘3개월 후 인하 가능성’이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숫자로 보여주는 이창용식 투명성은 과연 시장에서 통했을까. 국고채 금리는 2%대로 내려오며 긴축 기조가 강했던 7월 금통위의 생각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한은은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반영된 결과라는 변을 내놓았지만 한은의 핵심 메시지를 시장이 이해하지 못한 건 매한가지다.
지난달 국회는 금통위원들을 소환했다. 그러나 한은은 독립성을 근거로 이들을 꽁꽁 감쌌다. 금통위원들이 침묵하는 사이 서울 아파트 가격은 매주 치솟았고 환율은 연일 널뛰고 있다. 정점을 찍은 건 코스피지수가 8% 넘게 폭락한 5일 ‘블랙 먼데이’였다. 주요국 증시가 빠르게 낙폭을 회복하고 있지만 이성보다 공포가 시장을 장악하며 변동성 장세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7인의 현자로 꼽히는 금통위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진 이유다.
중앙은행이 어떤 방식으로 시장과 소통하는 게 나은지 정답은 없다. 다만 학계가 진단하는 투명성은 경제 정보 강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책 발표의 투명성도 중앙은행의 덕목 중 하나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기회가 될 때마다 대중을 만나는 이유다. 통화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다.
금통위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시도로 풍성해지고 있다. 다만 첫술에 배부를 수만은 없다. 과속하면 탈도 나는 법이다. 금통위원들도 시장과의 접점을 어떻게 하면 조금씩 늘릴 수 있을지 되짚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