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선진-개도국 소득격차 20년 만에 확대…'K-원조' 최적기왔다

[ODA 현장 직접 가보니]

3高에 개도국 경제 휘청

韓 ODA 효과 극대화 호기

시장개척 저성장 돌파구 역할도 기대

다만 GNI 대비 지원액, 31개국 중 28위

ODA 양적·질적 제고도 필요

정부, 하반기 혁신 로드맵 발표

베트남 박장성에 있는 한·베기술대에서 학생들이 한국이 지원한 기자재를 활용해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박장)=이태규 기자베트남 박장성에 있는 한·베기술대에서 학생들이 한국이 지원한 기자재를 활용해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박장)=이태규 기자




#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동북쪽으로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박장성 한·베기술대. 대한민국이 건물 신축 등을 지원해 2012년 설립된 이 전문대학에서는 여름방학에도 학생들이 계절학기 수업을 듣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학교의 응우옌꽁통 총장은 “한국의 지원 덕분에 10년간 학생 수가 6000명으로 20배 늘고 국가주석 표창까지 받았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글로벌 중추 국가’라는 정부 목표의 주춧돌이 되는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은 물론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등 세계 곳곳으로 뻗어가고 있다. ‘K원조’는 해외에 유·무상 지원을 통해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고 기업의 현지 진출로 연결돼 국부를 창출하고 있다.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한국의 ODA 예산은 올해 31% 급증하며 사상 첫 6조 원을 돌파했다.

마침 국제 경제 상황은 ODA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호기다. 세계은행(WB)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1인당 소득 격차가 꾸준히 줄다가 2020~2024년에는 21세기 들어 처음 확대되는 ‘역사적 역행’을 맞았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에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개도국 경제가 악화했기 때문이다. 원조를 받는 개도국의 상황이 절실해져 작은 도움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한국도 구조적 저성장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어 ODA를 잘 정비·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그간 소홀했던 아프리카 등 신시장 개척에 ODA가 마중물이 될 수 있어서다.



해외 원조를 놓고 꼭 따라붙는 의견은 “우리도 먹고살기 힘든데 왜 해외에 돈을 주는가”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 수조 원의 예산을 지원하지 말고 그 돈으로 국내 빈곤층을 지원하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다. 실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올 6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당시 아프리카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를 2030년까지 100억 달러로 확대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그건 없어지는 돈”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일견 타당한 말 같지만 ODA는 더 큰 결실로 돌아온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선진국들도 이를 노리고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ODA를 통한 국가 이미지 제고가 결국 해당 국가로의 수출 증가 및 국내 기업의 현지 진출로 이어져 국부 창출의 원천이 된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전 세계 ODA 규모 1위인 미국의 지난해 지원액은 660억 달러(약 88조 4000억 원)였고 독일은 366억 달러(약 49조 원), 일본이 196억 달러(약 26조 원)였다. 한국은 31억 달러(약 4조 2000억 원)로 14위였다.

베트남 박장성에 있는 한·베기술대에서 학생이 한국이 지원했다는 증표가 붙어있는 기자재를 활용해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박장)=이태규 기자베트남 박장성에 있는 한·베기술대에서 학생이 한국이 지원했다는 증표가 붙어있는 기자재를 활용해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박장)=이태규 기자



한국 정부의 ODA는 △산업 인력 양성 △과학기술 지원 △인도주의적 지원 등 세 갈래로 이뤄지고 있다. 우선 산업 인력 양성의 경우 ODA를 통해 손에 잡히는 효과를 볼 수 있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현지에서 숙련된 인재 확보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한국식 기업 문화에 익숙한 인력도 부족해 현지에 산업 기술 관련 대학을 설립, 한국 기업에 딱 맞는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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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의 동쪽에 위치한 박장성의 한·베기술전문대가 대표적인 예다. 이 학교는 한국의 ODA 등으로 2012년 설립돼 현재까지 우리의 사후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 인근에 삼성전자와 반도체 후공정 업체 하나마이크론비나 등이 위치해 있는데 응우옌꽁통 총장은 “졸업생 중 50%가 한국 기업에 취업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지원도 활발하다. 개도국 역시 결국 과학기술이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는 지름길이라 보고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등 해킹 공격이 계속 발생해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는 한국에 사이버 보안 전문 인력 양성 역량 강화를 요청했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도 2022년부터 2027년까지 740만 달러를 투입해 도움을 주기로 했다.

인도적 지원도 중요 축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개도국이다 보니 지방에 거점병원이 드물고 마음놓고 먹을 식수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라오스에서는 아동병원을 건설하고 폐기물을 비료 등으로 바꿔 환경을 개선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외교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우리 경제의 30년 먹거리는 미중일러 등 주변 4강이 아닌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아프리카 등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이 중요하지만 이미 경제적 교류가 발달해 추가적인 국부 창출 가능성은 제한적인 만큼 다른 나라들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전체적인 ODA 예산을 볼 때 총량이 선진국에 비해 적고 집행 측면도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지원 비중은 지난해 기준 0.1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31개국 중 28위에 머물렀다.

ODA 집행 과정에서 부처 간 칸막이에 따른 분절화, 중복 사업 등도 문제다. ODA는 유상과 무상 지원으로 구분되고 유상 지원은 기획재정부가 관할하고 있다. 집행은 한국수출입은행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통해 이뤄진다. 무상은 KOICA를 주축으로 각 부처와 산하기관·지방자치단체 등이 집행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ODA 예산을 46개 정부 유관기관이 집행하고 사업 수도 1976개로 2000개에 육박한다. 당연히 겹치는 사업이 나올 수밖에 없고 지원을 받는 나라도 한국의 어느 기관을 접촉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도 국정감사 등에서 이 같은 문제가 단골 소재로 지적받자 개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통해 하반기 혁신 로드맵을 마련하고 내년 상반기 발표 예정인 4차 개발협력 기본계획(2026~2030년 적용)에 반영할 방침이다.

하노이=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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