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장 운영만 30년째인데 이렇게 빠르게 바다가 익는 것은 처음이에요. 도대체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막막합니다.”
20일 오전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항 인근 가두리 양식장. 9호 태풍 종다리가 북상함에 따라 어민들은 빠르게 항에서 양식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양식장에 다다르자 더운 바람을 타고 역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10칸으로 나뉜 양식장에는 칸칸마다 자라던 조피볼락(우럭) 수십 마리가 둥둥 떠올라 있었다. 우럭 사체에서 빠져나온 부패한 지방 성분이 가두리 그물에 달라붙었고 양식장 발판은 사체를 걷어내며 흘린 기름 성분으로 미끄러웠다.
양식장 주인 윤인호(53) 씨는 “우럭은 찬물에서 서식하는데 그동안 고수온으로 죽은 사체들이 물 밑에서 떠오르고 있다”며 “냉수대가 소멸되자 자식처럼 키운 생선들이 며칠 사이 빠르게 죽어가고 있는데 요즘 날씨를 보면 피해가 계속될 것 같다”고 한숨을 토해냈다.
윤 씨는 1㏊ 규모의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농어와 숭어·참돔·우럭·방어 등을 키우는데 특히 고수온에 취약한 우럭 피해가 가장 커 걱정이다. 찬바람이 부는 11월 출하할 예정이던 우럭이 떼죽음을 당해 생계에도 직격탄을 맞았다.
윤 씨는 “고수온으로 약해진 어류에게는 스트레스가 가중될까 봐 사료도 주지 못한다. 그대로 둔 상태에서 수온이 떨어지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며 “죽어 떠오르는 우럭을 매일 뜰채로 걷어 올리는 것 외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안타깝고 가슴이 찢어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태풍 종다리가 비바람을 몰고 왔지만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바닷물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윤 씨를 비롯한 양식 어가를 운영하는 이들은 큰 태풍이 와 바닷물이 크게 뒤집어지지 않으면 고수온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또 고수온이 해결되더라도 급격한 수온 하락은 적조 증식을 유발할 수 있어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경남도에 따르면 이달 13일 냉수대의 소멸로 수온이 급상승했다. 16일 경남 해역에는 고수온 경보가 내려졌다. 국립수산과학원은 바다 표층 수온이 25도가 되면 고수온 예비특보를, 28도까지 오르면 주의보를, 28도가 넘으면 경보를 발령한다. 벌써 21일까지 엿새째 고수온 경보가 지속됐다. 경남도 집계를 보면 올여름 들어 거제·통영·고성·남해 등 102개 어가에서 284만 7000마리가 폐사하는 고수온 피해를 봤다.
경남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바닷물 수온 급상승에 양식 어류가 집단 폐사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충남도에 따르면 충남 태안 천수만 양식장에서는 41개 어가에서 우럭 158만 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최근 2년간 피해가 없었으나 올해 급증했다.
경북과 전남, 부산에서도 고수온에 취약한 어종의 폐사가 잇따르고 있다. 포항 20개 어가에서 54만 마리 등 경북에서 55만 5000마리, 전남은 18개 어가에서 29만 3000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최근 양식 피해는 총 567만 2000마리에 달했다.
양식 어민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장에 검은색 차광막을 치고 산소 발생기, 저층 해수 공급 장치 등 대응 장비를 가동하고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물론 지자체들도 피해 예방에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다. 양식장 물고기 선별 이동 금지, 먹이 공급 중단 등을 유도하고 액화산소 24시간 공급, 차광막 설치, 조류 소통 등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피해 어가 경영 안정을 위해 보험금이 신속하게 지급되도록 하는 등 신속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태풍 영향에도 고수온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적조 생물이 집적될 수 있는 만큼 양식장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