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박인비의 여름’은 무척 뜨거웠다.
그해 8월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에 마련된 기자실에는 전 세계에서 온 많은 기자들로 붐볐다.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그리고 US여자오픈까지 3개 메이저 대회에서 잇따라 우승한 박인비가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한 해 4개 메이저대회를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에 도전하는 것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도 많은 기자들이 대기록 도전을 직접 보기 위해 현지로 날아갔다. 당시 연습라운드 후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스윌컨 다리를 배경으로 박인비와 박세리 그리고 신지애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아쉽게도 박인비는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2024년 8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 명의 골프 전설 중에 한 명이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1988년생 신지애(36)다. 11년 전 디펜딩 챔피언으로 참가했던 신지애는 공동 36위로 썩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25일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파72)에서 열린 AIG 위민스 오픈 3라운드에서 단독 선두로 올라 12년 만에 다시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2008년과 2012년에 이어 이 대회 3번째 우승 도전이다. 3라운드에서 신지애는 버디 7개, 보기 2개로 5언더파 67타를 쳐 합계 7언더파 209타로 리더보드 맨 윗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우승자 릴리아 부(6언더파 210타 단독 2위), 세계 1위 넬리 코르다(5언더파 211타 단독 3위),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리디아 고(4언더파 212타 공동 4위)가 모두 신지애 뒤에 있다.
어떻게 보면 밋밋해 보이기도 하는 올드코스는 상당히 창의적인 골프를 요구하는 곳이다. 러프가 그리 질기지 않고 체력 보다는 머리 싸움을 많이 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린 밖에서 50m도 넘는 퍼팅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어수선한 느낌마저 드는데, 페어웨이와 그린을 공유하는 홀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단독 그린은 1번, 9번, 17번, 18번 등 4개 홀뿐이다. 나머지 14개 홀은 한 그린에 핀을 2개 꽂아 같이 쓴다. 9번 홀까지 계속 멀어졌다가 다시 18번 홀로 돌아오는 링크스코스이기에 가능한 설계다.
1번 홀과 18번 홀은 페어웨이를 같이 쓴다. 아무리 삐뚤어진 샷도 페어웨이를 벗어나지 않을 것처럼 넓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넓은 페어웨이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1번과 18번 홀일 것이다. 심지어 그린과 다음 홀 티잉그라운드도 붙어 있는 곳이 많다. 올드코스가 더욱 어수선한 이유는 티잉그라운드에서 페어웨이와 그린이 잘 보이지 않는 홀이 많아서일 듯하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홀도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로드홀’로 불리는 올드코스 17번 홀은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는 홀이다.
하지만 신지애는 바로 이 홀 버디로 단독 선두에 오를 수 있었다. 1, 2라운드에서는 보기를 범했지만 이날 205야드를 남기고 친 20도 하이브리드 클럽으로 공을 핀에 붙여 버디를 잡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부는 강한 바람 속에서 신지애의 두 번째 샷이 그린 오른쪽에 떨어져 왼쪽으로 휘면서 1m 안쪽으로 붙는 장면에 현지 중계진은 “천재적인 플레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다.
‘2013년 박인비’가 대단했다면 ‘2024년의 신지애’는 정말 위대하다고 할 것이다.
신지은이 리디아 고와 함께 공동 4위에 올랐고 임진희는 아타야 티띠꾼(태국), 알렉사 파노(미국), 인뤄닝(중국)과 함께 공동 6위(3언더파 213타)를 달렸다.
김효주가 공동 16위(1언더파 215타), 이소미 공동 19위(이븐파 216타), 그리고 양희영은 공동 27위(1오버파 217타)로 최종 라운드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