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7일 국무회의를 열어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3.2%(20조 8000억 원) 늘린 677조 4000억 원으로 확정했다. 올해(2.8%)보다 소폭 늘어난 증가율이지만 건전재정 기조는 지켰다. 문재인 정부 시절 편성한 2018~2022년 예산의 평균 증가율(8.7%)과 비교하면 35%수준이다. 내년에도 불필요한 예산을 덜어내는 지출구조조정을 실행하고 부처간 협업 예산으로 저성과·유사중복 투자를 최소화했다.
정부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정부 출범 첫해인 2023년 24조 원, 올해 23조 원의 지출구조조정을 단행한 뒤 내년에도 다시 24조 원의 구조조정으로 계속됐다. 그동안 폭증한 국가채무 탓이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를 강화시켰다. 문재인 정부 기간에 늘어난 국가채무는 416조 원으로 이전 두 정부(이명박·박근혜)에서 증가한 것(351조 원)보다 많다. 재정중독에서 벗어난 덕분에 국내총생산(GDP)대비 50%에 육박했던 국가채무도 내년 47.4%로 2028년까지 50%대 초반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지출구조조정에도 장애인·노인·보건복지 249조 최대 편성
지출 구조 조정으로 확보한 예산은 생계와 의료, 장애인·노인 지원 등 보건·복지·고용에 가장 많은 249조 원이 쓰인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관행적·비효율적인 사업을 과감히 축소하는 지출구조조정을 했지만 국가재정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다”며 “민생지원을 최우선으로 당면한 민생과 경제사회 문제 해결에 필요한 투자를 아끼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 연간 생계급여를 2200만 원에서 2341만 원으로 141만 원 인상하고 장애인 취업을 지원하는 고용장려금 수혜인원을 63만 3000명에서 75만 6000명으로 대폭 확대했다. 노인인자리는 역대 최대인 110만 개로 늘렸고 한부모 가정을 위해 양육비 국가 선지급제를 도입했다. 67만 9000개 영세 소상공인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배달·택배비를 연 30만 원 지원하는 한편 스케일업 전용자금 4000억 원을 신규 지원키로 했다. 농어민 소득안정을 위해 농업직불금을 3000억 원 증액하고, 2000억 원 규모의 수입안정보험도 도입하기로 했다.
특히 올해 대폭 삭감된 국가연구개발(R&D)예산은 AI와 바이오, 양자 등 3대 게임체인저에 집중해 해당 분야에만 3조 5000억 원을 편성했다. 올해 R&D 예산 26조 5000억 원에 비해 11.8% 가량 증액된 29조 7000억 원이 책정됐다. 12대 분야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정부의 재정 정상화 노력으로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2.9%로 올해(3.6%)보다 0.7%포인트 개선된다. 재정준칙 기준인 3.0%이내로 관리재정수지가 들어온 것은 2019년(2.7%) 이후 처음이다. 재정중독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데 6년이나 걸린 셈이다.
국세수입 개선…올해보다 15.1조 증가 전망
2년 연속 역대급 세수결손에 시달렸던 국세 수입도 내년에는 개선될 전망이다. 정부는 내년 국세수입이 15조 1000억 원 증가한 382조 4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임금상승과 취업자 증가에 따라 소득세가 2조 2000억 원 증가하고, 주요기업의 실적 새선에 따라 법인세가 올해 예산 대비 10조 80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부가가치세 역시 올해보다 6조 6000억 원 늘어난다는 게 정부 전망치다.
다만 손 쓸 방법 없이 늘어나는 의무지출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연금 등 법에 지급 의무가 명시돼 있어 정부가 임의로 줄일 수 없는 의무 지출이 앞으로 5년 동안 연 5.7%씩 늘어나게 된다. 정부의 당초 전망치보다 0.7%포인트가 증가한 수치다. 2022년까지도 전체 총 지출의 50%를 넘지 않았던 의무지출은 2023년 340조 3000억 원으로 정부가 현안 대응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재량지출(298조 4000억 원)을 처음으로 역전 한 뒤 격차를 벌려갈 전망이다. 중기재정지출 계획상 2028년까지 의무지출이 연 5.7% 늘어나는 동안 재량지출은 연 1.1%늘어나는 데 그친다. 법령개정 사안인 의무지출은 손대지 않고 재량지출에 구조조정을 이어온 탓도 있다. 그렇다 보니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 노력에도 내년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은 77조 7000억 원으로 올해 정부 전망치(72조 7000억 원)보다 악화할 전망이다. 세수 악화까지 이어질 경우 2.9%로 개선된 적자비율이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3년 연속 법정한도 넘어서는 국세감면율
내년 국세감면율은 법정한도(15.2%)를 넘겨 15.9%(78조 178억 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2023년 이후 3년 연속 법정한도를 넘기게 된다. 현 정부 출범 전에는 2008년(1.0%포인트)과 2009년(1.8%포인트), 2019년(0.8%포인트), 2020년(1.2%포인트) 4차례 법정한도를 초과했다.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는 “세수 추계의 정확성을 떨어뜨리는 부문별 감세보다 경제 선순환을 일으키는 법인세 감면 등 세수 확충에 유리한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도 “재량 지출 구조조정으로는 건전재정 구축에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라며 “법령 개정 사항인 법정 의무 지출도 야당을 설득해 재정 개혁 수준의 전환을 해야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관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의결된 내년 예산안은 다음 달 2일 국회에 제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