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의사단체들의 반대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27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의학회 명의로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PA(Physician Assistant·진료지원) 간호사 활성화는 전공의들에게 의료현장에서 떠나라고 부채질하는 정책"이라며 "간호법의 정략적 추진에 반대하며 정부의 저질 정책에 국회마저 동원되는 현실을 개탄한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간호법 제정을 통해 PA 간호사가 제도화되면 의료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환자 생명을 위협할 것이란 입장이다. 이들은 "(PA 간호사 제도화는) 전공의 수련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간호사를 의사로 둔갑시킨다는 발상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며 "간호법이 제정될 경우 선배 의사로서 제자들에게 돌아오라고 할 수 없음을 밝힌다"고 못 박았다. 특히 국회에 발의된 간호법이 의료법과 달리 처벌이나 제재 규정이 없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간호사가 간호법을 위반해도 간호법으로는 제재를 할 수 없으며, 이는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매우 위태롭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임 회장은 "의료현장에서 PA가 필요하다면 교육과 훈련 과정, 질 관리, 업무범위와 위반 시 제재방안, 응급구조사나 의료기사 등 다른 직역과의 업무 조율, 전공의 수련에 미치는 악영향 최소화 등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간호조무사의 권익도 합당하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즉흥적 정책과 땜질식 처방은 반민주적이며 반헌법적"이라며 "국회가 이런 정부의 모습을 제대로 비판하고, 보건의료 모든 직역이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마련해 나가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국회는 의료현장에서 의사 업무 일부를 대신하고 있는 PA 간호사를 제도화하고 이들의 의료행위를 보호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 2월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병원을 빠져나가자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호사가 의사 업무의 일부를 대신하도록 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 때 야당 주도로 간호법이 추진됐던 것과 달리, 올해는 여야 모두 간호법 제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입법 가능성이 높아졌다. PA 간호사 업무범위 등 몇 가지 쟁점을 놓고 여야간 의견차가 존재하는 가운데 간호사·의료기사 중심으로 구성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마저 오는 29일 전국 61개 병원에서 동시 파업을 벌이겠다고 예고하자 관련 논의에 더욱 속도를 붙고 있다.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이 통과될 경우 노조의 반발이 누그러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여야는 이날 오후 7시부터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밤샘 심사를 벌이기로 했다.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여야가 극적 타결을 이루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처리가 가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의 투쟁에 집중하는 사이 타이밍을 놓친 의사단체는 지난 19일에서야 "간호법 입법을 중단하지 않으면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서겠다"며 경고장을 날렸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간호법이 이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임현택 의협 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경기도의사회는 지난 19일 성명서를 통해 "(간호법이 통과되면) 의료인 면허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화된다"며 "간호법 통과를 직무유기하고 회원들 신뢰를 상실한 의협 임현택 집행부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총사퇴하라"고 직격했다.
간호조무사를 비롯해 지난 21대 국회 때 의사들과 함께 간호법 제정을 막아섰던 14보건복지의료연대도 작년과 달리 한발 물러선 입장을 취하고 있어 의사들의 투쟁 동력은 예전 같지 못하다. 임 회장은 정부의 의대 증원과 간호법 추진 등에 반대하며 전날부터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의협 대의원회는 오는 31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의대정원 증원 저지·필수의료 패키지 대응·간호법 저지 등 총 3가지 현안에 대응할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필요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