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방문한 전남 포스코 광양제철소 후판공장. 시뻘겋게 달아오른 1200도의 슬래브가 컨베이어벨트 위를 지나고 있었다. 슬래브는 용광로에서 만들어진 쇳물을 시루떡같이 말랑하게 굳힌 덩어리인데 이 공장에서 압연 과정을 거쳐 6㎜ 이상의 두꺼운 철판으로 탄생한다. 슬래브를 사방으로 넓게 펴주기 위해 90도씩 돌려 롤러에 넣어주는 작업이 공정의 핵심이었다.
공장은 지난해 슬래브를 벨트 위에서 자동으로 회전시켜주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도입했다. 무려 40년 만의 변화다. 이전에는 작업자들이 눈으로 직접 각도를 확인하며 조이스틱을 통해 하루 평균 880번씩 수동으로 슬래브를 돌렸다. 숙련도에 따라 10초에서 30초까지 작업에 편차가 있었고 ‘휴먼에러’의 위험성도 늘 안고 있어 현장에서는 항상 긴장감이 넘쳤다.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된 후 작업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날 제어판에는 여전히 조이스틱이 달려 있었지만 조정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AI가 열화상 시스템을 통해 슬래브의 소재와 위치·각도를 측정하고 서버에 축적된 숙련 기술자들의 제어 데이터를 학습해 슬래브를 돌리기 때문이다. 작업자들은 압연 과정 전반을 관리하며 다른 돌발 상황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
시스템을 개발한 김무준 광양제철소 후판부 후판기술개발섹션 대리는 “이제 막 1단계 개발이 완료된 시점이라 아직 숙련자만큼 작업이 빠르지 않고 정확도도 93% 수준”이라면서도 “2026년 최종 모델이 완성되면 업무 효율과 정확성 모두 갖추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리는 이 시스템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 받아 지난해 광양제철소장상을 받았다.
후판공장에 이어 찾은 제3제강공장에서도 AI의 활약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제강은 용광로에서 뽑은 쇳물을 전로에 넣고 첨가물과 함께 다시 끓여 탄소·망간·실리콘 등 불순물을 제공하는 공정이다. 슬래브를 만들어내는 연주(연속 주조) 공정으로 적절한 온도의 용강(불순물 제거된 쇳물)을 끊기지 않고 공급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민범기 3제강공장 파트장은 “중간에 작업이 끊기면 제품 규격이나 형태를 맞출 수 없어 무용지물의 쇳덩이가 된다”며 “작업자들끼리 공정이 끊기지 않도록 하루 100통 이상 무전을 날리며 시간을 맞춰야 했다”고 전했다. 광양제철소에서는 275톤을 1개의 연주로 총 8개 연주를 잇달아 진행하는데 용광로에서 쇳물이 도착하는 시각부터 첨가물 준비 및 온도 유지 상황, 연주 공정으로 보내는 시각 등 공정 스케줄을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무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이 사라진 것은 2021년 전체 공정에 시각·온도 통합 관리 시스템이 도입되면서다. 이제 과거 축적된 데이터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측정 값을 기반으로 AI가 강종별 조업 예상 시간과 목표 온도를 제시한다. 쇳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예상 시간과 실제 조업 상황 등이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작업자들은 이 정보를 기반으로 첨가물 주입 등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실제 이날 공장 상황실에서는 작업자들이 실시간으로 모니터와 현장 폐쇄회로(CC)TV를 체크할 뿐 무전을 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최기영 3제강공장 주임은 “하루 무전 수가 10통 정도로 줄었다”며 “과거 개인적 경험에 의존했던 것들이 시스템화하면서 조업 시간은 단축된 반면 생산성은 높아졌다”고 말했다. 민 파트장은 “이전에는 작업 지체 상황에 대비해 쇳물의 온도를 지금보다 15도 정도 높여 공정을 진행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온도를 1도 올리는 데 상당한 연료를 투입해야 하는 만큼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봤다”고 했다.
포스코는 이처럼 각 생산 공정에 AI 기술을 적용해 빠른 ‘디지털 전환(DX)’을 이뤄내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숙련 노동자의 감소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작업 효율을 높이고 비용까지 절감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위험한 작업 현장의 안전사고까지 예방할 수 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실제 광양·포항제철소에는 2021년부터 고로 설비 점검을 위한 4족 보행 AI로봇이 도입된 상태다. 고정식 센서와 CCTV가 여러 곳에 설치돼 있지만 설비 사이의 협소 공간까지 볼 수 없고 화상과 가스 중독 등 안전 문제가 제기돼 이들의 힘을 빌리게 됐다.
제철소에는 AI를 기반으로 한 철도 건널목 충돌 예방 시스템과 지게차 안전 제동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쇳물 운반 기관차가 다니는 철로 건널목 CCTV 화면과 연동한 AI에 사람과 차량의 모양을 학습시켜 물체가 감지될 경우 즉시 경보가 울린다. 지게차도 영상 인식 기술과 자동 정지 속도 제어 기술 등이 적용돼 사람을 발견하면 즉각적으로 단계별 정지 시스템이 작동된다. 충돌 위험 거리가 6m 이내면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고 4m 지점에서 감속이 시작돼 2m에서 자동 정지된다. 현재 이 시스템들은 보완 작업을 거쳐 정확도를 높여가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AI의 현장 도입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기술 혁신을 이뤄내 시장을 선도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