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
아무도 없는 숲속의 아름다운 길을 걷던 한 가장. 평화롭기 그지없었던 그의 앞에 베일에 싸인 여성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누리던 평화가 공포로 바뀌는 시간은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 찾아온 불행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펜션을 운영하는 한 남성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과거의 주인 상준(윤계상)은 아내와 열심히 펜션을 일궈가는 가장이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도 잠시,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 연쇄살인마가 펜션을 찾았고 상준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숙박키를 건네줬다. 이후 펜션에서는 토막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매스컴을 타자 살인이 일어난 펜션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어졌다. 펜션이 망하자 가세는 급격히 기울고 부부 사이는 악화되고야 만다.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난 이후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펜션을 운영하는 영하(김윤석)의 모습이 포착된다. 그는 친구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 소소한 일상을 누린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한 여성 성아(고민시)가 펜션을 찾는다. 아들로 보이는 한 아이와 찾아왔으며 모자관계라기에는 묘하게 느껴지는 어색한 기운에 어딘가 찝찝한 감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다 문득 영하는 성아에게 숨겨진 끔찍한 비밀이 있음을 감지하지만 이전의 사건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던 영하는 펜션에서 벌어진 불행에 관한 단서를 지우기 시작한다.
◇모완일 감독의 야심작...'부부의 세계' 뛰어넘었나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지도 못한다는 사회적 현상을 일으킬 정도의 화제작이었던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연출한 모완일 감독의 신작이다. 서사는 막장이나 전혀 막장 같지 않게 연출하는 그의 세심한 시선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에서도 이어진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이해가 된다는 건 그만큼 연출만으로도 서사가 잘 전달됐다는 의미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같은 역을 맡은 다른 배우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다소 시청자들에게 난해할 수 있는 서사 구조를 가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완일 감독의 연출은 시퀀스 사이의 흐름을 완만하게, 서사 간의 연결성을 부드럽게 연결시켜 이해도의 허들을 낮춘다.
◇'절박한' 김윤석·윤계상, '광기어린' 고민시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이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캐릭터의 알찬 서사다.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은 과거 혹은 현재의 어떠한 고리를 통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작품 초반부부터 이 모든 고리들은 시청자에게 이해해야 할 문제 혹은 수수께끼로 다가가며 흥미를 자극한다.
더불어 이러한 질문들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는 배우들의 연기다. 생존 앞에 윤리가 서있을 자리를 잃은 상황 자체를 의미하는 펜션 주인의 존재, 그리고 그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김윤석과 윤계상은 각자 격렬한 감정 연기를 선사한다. 고민시 또한 전작들에서 보여준 이미지들을 뛰어넘은 성아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해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을 뒤흔들어놓는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행동과 그 행동 속에 스며든 핏빛 진실을 마주하는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을 성아의 눈빛에 서린 광기의 한복판으로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