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 첫 대정부 질문이 진행된 9일 첫 질의자로 나선 '정치 9단'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정부 측 한덕수 국무총리가 만담 같은 설전을 벌였다. 이 둘은 김대중 정부 시절 박 의원은 청와대 비서실장, 한 총리는 경제수석으로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다.
이날 열린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5선 박 의원은 특유의 노련한 질문으로 한 총리를 압박했고, 한 총리는 그대로 되받아치며 본회의장 곳곳에서 웃음과 야유가 쏟아졌다. 박 의원은 한 총리를 발언대로 불러세운 뒤 "이제부터 내려간다. 산은 내려갈 때가 더 중요하다. 대통령이 달나라 대통령이냐"면서 임기 중반인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지적했다. 한 총리는 “대통령은 항상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를 위해 할 일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하며 설전이 시작됐다. 이어 응급실 뺑뺑이 사태를 비롯한 의정갈등으로 화제를 넘긴 박 의원은 "응급실은 24시간 문 열고 불 켜놓은 편의점이 아니다"라면서 "이 모양, 이 꼴은 누구 책임이냐"라고 한 총리를 몰아붙였다. 이에 한 총리는 한 언론사의 보도를 거론하며 "의료 뺑뺑이는 10년 전부터 있었다"라고 질의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때 여당 의석에서는 "박지원도 다 됐네"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이어 박 의원은 한 총리에게 "우리가 잘 아는 사이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한 총리는 "너무나 잘 알죠"라고 답하자 박 의원은 "한 총리는 자신의 배우자가 디올백 300만 원짜리 받으면 받을 것이냐" 몰아쳤다. 이에 한 총리는 "가정을 전제로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면서 "저는 의원님과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의 관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 의원은 "그 순하던 한덕수 총리가 요즘 대통령이 싸우라고 하니까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저돌적으로 반항을 하고 있다"라면서 "제발 옛날의 한덕수로 돌아가라"라고 훈수하자 총리는 "저 안 변했습니다"라고 응수했다. 이어진 질의에서 한 총리는 박 의원의 윤석열 정부의 최근 불거진 인사 논란에 관한 지적에 "제가 보기엔 모든 정권에 걸쳐 최고였던 박지원 의원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자 박 의원은 "대통령에게 건의해서 나를 쓰라고 하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의석에서는 웃음보가 터져 나왔다. 주어진 질의시간 말미에 국무위원석으로 돌아가려는 한 총리를 불러 세운 박 의원은 "삼청동(총리공관 위치)에 초청이나 한번 해보세요"라고 하자 한 총리는 "사실은 저는 국정원장실에서 한 번쯤 부를 줄 알았습니다"라고 되받아치면서 두 사람 간 만담 같은 설전이 정점을 찍자 여야 의원들은 소속 정당과 관계 없이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오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