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정책 혼선에 고개숙인 이복현…"은행 가계대출 자율성 강화"

■금감원장·은행장 간담회

가계대출 9.5조↑ 37개월만에 최대

李 "엄정관리 기조 변함없다" 강조

은행 "다주택자 등 투기 심사강화"

실수요자 주담대 예외조항 잇따라

제각각 규제에 당분간 혼란 불가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은행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은행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잇따라 내놓은 가계대출 규제 메시지로 시장 혼란이 가중됐다는 지적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특히 급증하는 가계대출에 대한 엄정 관리 기조는 유지한다면서도 ‘관치금융’ 논란을 인식한 듯 개입보다는 은행의 자율적 관리가 강화돼야 한다고 한 발 물러섰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발언과 궤를 맞추면서 금융 당국의 ‘원 보이스’를 강조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난수표’처럼 얽힌 은행별 대출 정책에 시장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 원장은 1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진행한 18개 국내은행 은행장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급증하는 가계대출 관리와 관련해 조금 더 세밀하게 입장과 메시지를 내지 못했다”며 “국민들과 은행, 은행 창구 직원들에게 여러 불편과 어려움을 드려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 원장이 ‘가계대출 조이기’ 과정에서 빚어진 시장 혼선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은행권이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잇따라 금리 인상에 나서자 이 원장은 은행들이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며 강한 개입을 시사했다. 하지만 해당 발언 이후 쏟아진 은행들의 대출 제한 강화 조치에 실수요자 피해가 발생하자 이달 4일 “가계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불과 열흘 사이에 금융 당국 수장의 메시지가 냉온탕을 오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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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이날 금융 당국을 포함한 관계부처의 ‘가계대출 엄정 관리’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8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9조 5000억 원 이상으로 2021년 7월(15조 3000억 원)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원장은 “가계대출을 엄정 관리하고 은행의 자율적인 여신 심사를 통해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이견이 없다”며 “필요하다면 어떠한 수단도 고려하겠다는 입장은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가계대출 관리의 중심축이 ‘은행의 자율’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최근 대출 실수요자가 겪는 불편함은 모든 은행이 동일하게 감독 당국 대출 규제만 적용하다 보니 발생한 결과”라며 “감독 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는 기본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며 은행이 각자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출 절벽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은행들이 체계적·점진적인 스케줄을 갖고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부탁을 드렸다”고 덧붙였다.



은행들도 이 같은 기조에 맞춰 투기 수요 차단은 강화하되 실수요자 불편은 최소화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자율 관리’에 나설 방침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은행장 대부분은 2주택자 이상 등 투기 수요로 보이는 대출에 대해서는 여신 심사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실수요자에 대해서는 ‘실수요자 전담 심사팀’을 운영해 선의의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전했다. 실수요 판단이 어려운 이른바 ‘그레이존(회색지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가계대출 정책이 거듭 뒤바뀌면서 차주의 혼란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은행들은 실수요자의 경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예외 조항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기존에 1주택자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지만 이날 주택 매도 계약서와 계약금 입금 내역 등 기존 주택을 처분하겠다는 증빙 서류를 지참하면 주담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출 실행 6개월 이내에 결혼을 하거나 2년 내 상속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실수요자로 간주해 주담대를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이때는 청접장이나 예식장 계약서, 상속 결정문 등을 은행에 내야 한다. 또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를 1억 원으로 묶었지만 임대차계약서를 구비하면 한도(1억 원) 이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신한은행도 1주택자가 새로 주택을 구매할 목적으로 주담대를 받을 때 대출 실행 ‘당일’에 원래 보유한 집을 팔 경우라면 주담대를 내주기로 이날 발표했다. 1주택자는 기존 집을 처분하는 경우라도 주담대를 원천적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에서 한 발 물러난 것이다. 이외에도 △ 혼인관계증명서 △폐쇄가족관계증명서 △사망확인서 △임신진단서(확인서) △수술확인서 또는 입·퇴원확인서 등을 제출해 실수요자임을 입증하면 최대 1억 원 한도 내에서 연 소득 150%까지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 기존에는 연 소득 100%로 제한했던 것을 완화한 것이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출 정책이 시시각각 변해 은행 직원들도 완벽하게 (정책을) 숙지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창구에서 상담하는 직원들도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보통 은행 두세 곳에서 대출을 알아보는 소비자들은 은행마다 다른 대출 정책 자체를 문턱으로 느낄 것”이라고 했다.


신중섭 기자·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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