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서는 정부가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서둘러줘야 한다는 절박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도체법을 발의해 보조금 지원 근거를 마련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실제 지원이 지연되면 시장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의미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10일 “전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이었던 인텔조차 불과 10년 만에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게 지금의 반도체 산업”이라며 “정부는 물론 정치권도 대기업 특혜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 지원 없이 기업 혼자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으로 산업이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갈수록 불어나는 시설 투자 비용이 부담이다. 실제 과거에는 반도체 회로 선폭을 줄이는 새로운 공정을 개발해 한계를 돌파하는 식으로 반도체 메모리 공급 용량을 늘려왔다. 하지만 미세공정 한계에 부딪힌 현재는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생산라인을 더 증설하는 물량 경쟁을 펼치고 있다. 메모리 공급 용량 1비트(bit)를 늘리는 데 들어가는 단위 비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팹(공장) 1곳을 늘리는 데 20조 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며 “정부 지원 없이는 경쟁이 힘들다”고 토로한 바 있다.
메모리는 물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에서도 보조금이 원가 경쟁력에 직결된다는 분석도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3㎚(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에 비용의 30%를 보조금으로 지급하면 보조금 액수만큼 장부상 자산가치와 감각상각비가 절감돼 10%의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문태 대한상의 산업정책팀장은 “반도체 생산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직접적 지원 방안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