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절전의 습관화가 답이다

허경옥 성신여자대학교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낮은 요금, 전기 소비 부추겨

생산비용 결국 소비자 부담

가격신호 정상화 절약 유도를

허경옥 성신여자대학교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허경옥 성신여자대학교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절기상 선선한 가을에 접어드는 시기임에도 폭염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올여름에는 폭염 속에서 전력 수요가 급증해 97.1GW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충분한 공급 능력과 예비 자원을 확보한 덕분에 엄청난 전력 수요를 무사히 넘기고 있지만 전기 요금 청구서를 받을 생각에 소비자의 걱정은 커져만 간다. 매년 여름이면 한국전력에서는 주택용 누진 구간을 확대 운영해 전기 요금 단가를 낮춰줌으로써 소비자의 부담을 완화해주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전기 요금이 이미 원가 이하로 낮게 부과되는 상황에서 요금 인하가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인지 여부다. 또 이 같은 요금 인하가 소비자들의 전기 및 에너지 절약에 긍정적인가 하는 점도 고민해봐야 한다.



한전의 누적 적자 41조 원과 부채 203조 원은 언젠가 소비자들과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단순 요금 인하보다는 효율적이고 절약하는 전기 소비 습관을 정착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통상 전기 요금은 요금 단가에 전력 사용량을 곱해 계산한다. 전기 요금이 인상되거나 전력 사용량이 증가하면 총요금은 증가한다. 올여름은 후자에 해당한다. 주택용 전기 요금을 지난해 5월 이후 현재까지 동결했으므로 만약 지난해보다 올해 내야 할 전기 요금이 늘었다면 이는 소비자가 전기를 그만큼 더 사용했다는 의미다. 물론 지난해보다 올해 여름이 무더웠던 만큼 전기 소비가 어쩔 수 없이 증가했을 수 있지만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구 온도는 계속 상승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꼭 필요한 만큼의 전기 소비가 이뤄진 것인지 꼼꼼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가구에너지패널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1인당 냉방 전력 소비량은 148.4㎾h 수준이다. 우리나라와 여름철 기후가 유사한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30% 낮은 103.6㎾h 수준이다. 또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의 4분의 1 수준인 36~40㎾h 정도라고 하니 우리 소비자들의 전기 사용 행태에 대해 고민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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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에너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저렴한 전기 요금 수준이 전력 소비 증가를 유발했다고 지적한다. 국내 전기 요금은 물가 및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해 원가 이하의 저렴한 수준으로 유지돼왔다. 최근 국제 에너지 위기를 겪으며 전기 요금이 인상되기는 했지만 지난해 주택용 전기 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위로 여전히 최하위권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올 7월 발표한 ‘기온 시나리오에 따른 2024년 여름 주택용 전력 수요 추정 및 전기 요금 영향 분석’을 살펴보면 국내 냉방 부하가 2016년을 기점으로 증가했으며 주요 원인으로 2016년 말 주택용 누진제 개편에 따른 전기 요금 부담 완화가 꼽힌다. 낮은 전기 요금이 알게 모르게 소비자의 전기 절약 행동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영세 농어민 보호를 위해 원가 및 타 용도에 비해 낮은 전기 요금이 지속 적용된 농사용 전기 소비가 빠르게 늘어난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해외 주요국에서는 높아지는 연료 가격을 소비자에게 부담하게 해서 소비자들이 이를 인지하고 자발적인 전기 절약과 효율 개선을 하도록 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냉방 전력 소비가 현저히 적음에도 범국민을 대상으로 에너지 절약 캠페인과 효율 개선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정부의 에너지 절약 기조하에 전력 기업 자체적으로 여름철 전기 절약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에너지 캐시백, 에너지 효율 향상 지원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지만 주요국 대비 전기 요금이 낮은 상황에서 전력 소비 절감에 따른 경제적 인센티브는 약할 수밖에 없다. 90% 이상의 높은 에너지 수입의존도를 보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전기 생산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 또 환경 외부 비용 등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비용은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요금 인하에 기반한 소비자 보호 대책은 일시적 방편에 불과하다. 오히려 가격 신호를 정상화하고 이를 통해 효율적이고 절약하는 전기 소비 습관을 가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소비자와 미래 세대에게 긍정적임을 강조하고 싶다.

올여름 전기 요금 청구서를 계기로 우리 모두 자신의 전기 소비 습관을 점검하고 더 무더워질 내년 여름에 대비해 지금부터 효율적이고 절약하는 전기 소비 행동을 습관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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