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등 인공지능(AI)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해결할 열쇠로 블록체인 기술이 부상하고 있다. AI 학습용 데이터를 무단으로 수집하는 빅테크 기업의 횡포를 블록체인으로 막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이용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하는 블록체인 특성상 실효성 있는 솔루션으로 자리잡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을 찾은 크리스 딕슨 앤드리슨호로위츠(a16z) 제너럴 파트너는 딥페이크 문제를 월드코인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월드코인은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개발한 홍채 인식 기반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다. 홍채 인식 기기인 ‘오브’에 홍채 정보를 인증하면 블록체인 기반의 월드ID를 발급받게 되는데 이를 활용하면 콘텐츠마다 제작자의 인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딕슨 파트너의 주장이다. 그가 몸담은 a16z는 약 630억 달러(약 85조 8000억 원)를 운용하는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털(VC)로 월드코인에도 투자한 바 있다.
콘텐츠에 담긴 고유 정보를 블록체인에 올려 분별하는 방법도 있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의 마이클 그로내거 공동창업자는 “딥페이크 논란에 따라 앞으로는 인증된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생겨날 수 있다”면서 “이를 테면 사진을 찍은 시간, 장소 같은 메타 정보를 암호화해 블록체인에 올려 검증 가능하다”고 전했다. 유일무이한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대체불가토큰(NFT) 등이 이러한 사례다. 다만 블록체인으로 딥페이크 영상을 구별하게 되더라도 딥페이크 범죄 추적이나 관련 피해 저감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AI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의 지식재산권(IP) 보호와 관련해서도 블록체인 ‘역할론’이 제기된다.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은 올해 초에는 구글과, 5월에는 오픈AI와 잇따라 계약을 맺고 레딧 게시물을 AI 학습용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오픈AI의 경우 계약 금액이 비공개였지만 구글과는 연간 6000만 달러(약 802억 4400만 원)의 계약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익은 정작 레딧에 글을 올린 작성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앞으로 AI로 인한 저작권 침해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재주를 부리는 곰이 수익을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레이어(L1) 블록체인 ‘스토리’는 이 같은 개인 이용자들의 콘텐츠 IP를 보호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사용자가 IP를 블록체인에 올리면 향후 이 IP가 AI 등에서 재사용될 때마다 적절한 수익을 배분하는 구조다. 스토리 개발사 PIP랩스는 a16z를 비롯해 삼성넥스트·해시드 등으로부터 약 1억 4000만 달러(약 1910억 원)를 투자받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효과를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IP 보호의 경우 이용자들의 참여가 관건이다. 블록체인의 특성상 인센티브를 받으려는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한데 IP 보호가 충분한 인센티브로 간주될지는 미지수다. 또 블록체인으로 IP를 보호한다 해도 AI 서비스가 스토리 체인을 연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이밖에 오태완 INF크립토랩 대표는 월드코인을 ‘디지털 세계에서 인간임을 증명하는 주민등록증’에 비유했다. 현실의 주민등록을 둘러싼 다양한 제도 덕분에 범죄 방지와 추적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월드코인 역시 제반 합의와 제도가 갖춰져야 실질적인 활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김남웅 포필러스 대표는 “월드ID를 갖고 있는 인간도 AI 딥페이크를 제작할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어디까지를 AI가 만든 콘텐츠로 볼 것인지 기준이 불분명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뿐만 아니라 제도와 사회적 합의의 측면에서도 발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