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저 수술해준 교수님께 (술을 마셔도 되는지) 여쭤봤더니 괜찮다고 하셨어요. 이제 수술한지도 좀 됐고 건재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요.”
영화 ‘기생충’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배우 박소담은 작년 말 한 유튜브 채널에서 건강이 좋아진 근황을 공개했다. 박소담은 지난 2021년 12월 갑상선 유두암으로 진단돼 수술을 받았다. 투병 후 모처럼만에 술을 한잔 하며 대화를 나누는 컨셉의 방송 출연이라 부담이 컸던 걸까.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진행자에게 “저 때문이라면 마셔도 된다. 건강도 정신 상태도 좋아졌다”며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목소리가 돌아오는데 8개월 정도 걸렸다. 촬영하면서도 매일 울었다”고 털어놔 힘든 시간을 보냈음을 짐작케 했다.
◇ 주춤하나 싶더니…갑상선암, 3년 연속 국내 암 발생률 1위
갑상선은 목 앞쪽 한가운데 튀어나온 부분, 흔히 울대뼈라고 불리는 갑상연골의 2~3cm 아래에 위치한 나비 모양의 내분비 기관이다. 갑상선호르몬을 생산 및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혈류로 내보내 체온 유지와 신체대사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갑상선에 생긴 혹을 ‘갑상선 결절'이라고 하는데 그 중 1~5%가량이 갑상선암으로 진단된다.
갑상선암은 비교적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이다. 작년 말 발표된 국가암등록 통계에 따르면 2021년 한 해동안 새롭게 암 진단을 받은 27만7523명 중 갑상선암은 3만5303명(12.7%)으로 가장 많았다. 인구 10만 명당 68.6명에서 발생해 3년 연속 국내 암 발생률 1위다. 과잉검진 논란과 함께 잠시 주춤해던 갑상선암 발생률은 2015년부터 연평균 3%씩 증가하는 추세다. 주로 여성에게 발생하지만 남성 환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박소담을 힘들게 한 갑상선유두암은 갑상선암의 약 90~95%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유형이다. 일각에서는 갑상선암이 다른 암보다 천천히 자라고 생존율이 높다는 이유로 ‘착한 암’ 또는 ‘거북이암’으로 부른다. 그러나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올해 5월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배우 장근석은 최근 이 점을 언급하며 “누군가는 ‘가벼운 암이다’, ‘빨리 나을 수 있는 축에 속한다’고 하는데 당사자에게는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감이 상당하다. (처음에는) 못 받아들인다”고 했다.
◇ 겨드랑이 대신 목에서 가까운 ‘입 안’으로 접근하는 수술법 첫 고안
어렵사리 갑상선암 진단을 받아들이고 수술을 앞둔 환자들이 직면하는 또다른 문제는 전통적인 절개 수술을 받을 것인지, 로봇 수술을 받을 것인지 여부다. 과거에는 목 중앙을 5cm 가량 절개하고 갑상선암을 제거했다. 수술 부위에 직접 접근하는 만큼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하지만 목에 수술 흉터가 남아 미용상 문제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로봇수술이 등장했지만 상대적으로 비싸고 수술 시간 및 입원 기간이 긴 점이 한계로 꼽혔다. 보통 겨드랑이, 유방 주변 등을 절개해 내시경이나 로봇 팔을 등으로 접근하는데 수술 부위(갑상선)까지 거리가 제법되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고 시간도 오래 걸렸던 것이다. 무엇보다 수술 범위가 넓어 환자들의 통증 정도가 심하고 회복도 더뎠다.
‘흉터를 최소화하면서도 갑상선과 조금 더 가까운 부위에서 접근할 순 없을까?’ 박소담의 수술을 직접 집도한 김훈엽 고대안암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는 독일 의료진의 연구하다 실패한 경구 갑상선 수술법에서 답을 찾았다. 인체 구조상 입과 목은 바로 연결돼 있어 수술 범위가 크게 줄어든다. 기존 내시경이나 로봇수술에 비해 통증이 훨씬 적을 뿐 아니라 수술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 미용 효과만? 목소리 변화도 거의 없어 수술 환자 만족도↑
김 교수가 개발한 로봇 경구 갑상선 수술법은 아랫 입술 안쪽에 작은 구멍을 내고 로봇 팔을 삽입해 갑상선만 정교하게 절제한다. 외부에 구멍을 뚫는 것이 아니라 수술 후 한달 정도면 구강점막의 상처가 희미해지고 몇달 지나면 완전히 사라진다. 무엇보다 목소리의 변화가 거의 없어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빠르다. 배우, 성우, 성악가 등 직업적으로 음성 보존이 중요하거나 켈로이드 피부 등 체질상 상처가 많이 남는 갑상선암 환자들 사이에서 김 교수가 ‘신의 손’으로 통하는 이유다.
입안 좁은 공간에서 360도 회전하는 로봇 팔로 갑상선암을 제거하는 방법을 구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김 교수는 “누구도 안 하던 수술을 하려다 보니 초기에는 구강 내 상재균에 의한 감염 위험 등 우려가 많았다”며 “수술 경험이 쌓이면서 감염 우려가 불식되고 목소리 변화가 거의 없는 등 미용 효과를 뛰어넘는 장점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10여 년간 김 교수가 시행한 로봇 경구 갑상선 수술은 2000례 가까이 된다. 갑상선과 매우 가까이 있는 반회후두신경은 물론 부갑상선이 일시적이라도 손상을 입은 비율은 0.1%가 채 되지 않는다. 수술 부위에서 암이 재발한 사례도 전무하다.
수술 중 후두 신경을 아주 작은 분지까지 미세하게 보존해 목소리의 변화가 거의 없어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이러한 장점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 의료진들이 김 교수의 수술법을 배우러 찾아오는데, 입을 통한 갑상선암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국내에서도 손에 꼽힌다. 그는 “갑상선암을 앓았던 경험이 환자 자신에게는 마음 속 아픈 흉터지 않나. 아무리 작은 흉터라도 남기지 않고 싶다던 목표가 실현돼 뿌듯하다”며 “환자를 위해 수술법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연구 개발 노력을 지속하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