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취임 후 일본은행 총재를 만난 뒤 추가 금리 인상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하면서 엔화 가치가 하락한 가운데 새 내각의 경제 각료들도 연이어 일본은행 총재를 만나 ‘디플레이션 탈출’을 강조하며 금융 완화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새 정권이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고 금융정책 정상화를 추진 중인 일본은행의 정책에 반대 의견을 노골적으로 표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4일 복수의 일본 언론에 따르면 전날 가토 가쓰노부 재무상과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 만나 회담했다. 이 자리에서 세 사람은 2013년 아베 신조 정권 시절 정부와 일본은행이 작성한 공동성명에 따라 조기 디플레이션 탈출에 노력하고 현재의 엔화 약세 진행과 주가 반등 등 시장 동향을 주시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아베 전 총리가 두 번째로 집권한 직후 발표한 이 공동성명은 ‘마이너스 금리’로 대표되는 일본 금융완화 정책의 근거가 됐다. 2일 이시바 총리가 우에다 총재를 만나 “(금융) 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경제가 발전하기를 기대한다”는 의견을 전한 뒤 하루 만에 경제 각료들이 완화 정책의 근거가 된 공동성명을 재확인한 것이다.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은 회담 후 기자단과 만나 “(공동성명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며 당분간은 재검토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어 “금융정책을 정상화해 나가는 큰 흐름은 당연하다”면서도 “중요한 건 타이밍의 문제”라고 신중론을 강조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금융 정상화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총리가 노선을 수정하고 나서면서 ‘예상 못 한 변수’에 금융시장도 출렁였다. ‘이시바 당선’이 발표된 뒤 엔화 가치는 달러당 141엔대까지 오르며 ‘엔고’ 강세를 보였지만, 얼마 안 가 신임 총리가 금리 인상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3일 환율은 147엔대로 급변해 엔저 전환했다. 수출주를 중심으로 주가가 반등하고, 당분간 저금리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닛케이평균지수는 상승했다. 이에 시장에선 “이달 27일 예정된 중의원 선거를 겨냥한 돌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고노 류타로 BNP파리바 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이달 중의원 해산·총선거를 앞둔 가운데 주가 하락이 계속돼 시장 우려가 강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유권자들에게 주는 것을 피하고 싶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사히신문은 새 정권의 일련의 언행을 “일본은행의 금융정책에 대한 개입”이라고 표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일본은행법은 일본은행이 정부 등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인정하고 있다.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총리가 ‘개인적인 생각’이라고는 했지만, 이는 상당히 애매한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총리의 한마디가 일본은행에 대한 압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