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을 하고 있는 최윤범 고려아연(010130) 회장은 지난 2일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열어 2조6635억 원의 자사주 공개매수를 결의했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건 자사주 취득 및 소각과 별개로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베인캐피탈이 4300억 원을 투입, 별도 공개매수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베인캐피탈은 운용자산(AUM) 규모가 1850억달러(250조 원)에 달하는 펀드다.
최 회장은 당시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베인캐피탈의 참전에 대해 “고려아연 경영과 이사회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순수 재무적 투자자이며, 현 경영진이 추진 중인 트로이카 드라이브 등 미래사업 방향에 대한 굳건한 신뢰와 지지 의사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인캐피탈은 공개매수를 위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 이름도 트로이카 드라이브 인베스트먼트라고 지었다.
시장에서는 최 회장이 베인캐피탈 크레딧 펀드를 백기사로 모셔오면서 큰 힘을 얻었다고 입을 모은다. 최 회장 입장에서 경영권 매각 의사가 없는 만큼 바이아웃(경영권 거래) 딜이 아닌 크레딧 펀드에서 투자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다만 크레딧 펀드의 전형적인 투자 방식을 감안하면 최 회장에게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같이 꺼낸다. MBK를 중국계 자금으로 비난하면서 정작 해외 펀드와 손 잡은 모순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있다.
6일 크레딧 투자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투자 구조를 보면 베인캐피탈 크레딧이 자기자금 900억 원에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3400억 원(최대 3700억 원)을 차입해 총 4300억 원의 실탄을 마련한다. 신용보강(담보)이 받쳐주지 않으면 투자를 실행할 수 없는 크레딧펀드의 속성상 최 회장을 비롯한 최씨 일가가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대부분이 담보로 제공된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고려아연 공개매수설명서를 보면 베인캐피탈은 주주 간 계약에 따라 갖는 권리를 담보하기 위해 최 회장 일가가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에 질권을 설정했다.
한투는 베인캐피탈 크레딧이 설립하는 SPC에 연 5%대 대출을 해주며 선순위자의 지위를 갖는다. 만약 차주인 SPC가 상환을 못하면 매입한 주식을 담보 실행해 처분하고, 모자라면 추가 담보로 제공된 최 회장 등의 주식도 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
거래의 핵심은 베인캐피탈 크레딧이다. 베인캐피탈 크레딧은 후순위 투자자로서, 선순위 권리자가 상환 받아가고 남은 자산에 한해 권리를 가진다. 그만큼 투자 위험이 커, 확약 받으려는 수익률도 높고 추가 신용에 대한 보강 요구도 클 수 밖에 없다.
고려아연 주식은 지난달 공개매수가 시작되기 전날인 12일 종가가 55만6000원이었다. 주당 30만원 가까이 웃돈을 붙여 매입하는 투자이다 보니 추가 담보 없이는 애초에 투자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각에서는 2조7000억 원에 달하는 단기 차입으로 마련한 회사 재원을 자사주 매입 소각에 쓴다고 했으니 순자산 감소와 가중된 재무 부담으로 인해 고려아연 주가가 40만원 대 이하로 하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만약 고려아연 주가가 최 회장과 베인캐피탈 크레딧이 애초에 약정한 담보 범위 밖으로 더 떨어지면 추가적인 담보를 요구하게 되고, 상황에 따라 주주간 계약으로 맺은 최 회장의 콜옵션(매수청구권)과 베인캐피탈 크레딧의 드래그얼롱옵션(동반매도청구권)이 발동되는 상황까지 이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