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미국 조지아 공장 생산 라인 중 일부를 하이브리드차(HEV)로 전환하는 배경에는 나 홀로 급증하는 HEV 수요가 있다. 이른바 전기차(EV)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속에 EV와 내연기관의 중간 지대 격인 HEV 시장이 커지면서 이 시장이 다시 한번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HEV 1위인 도요타의 경우 지난해 HEV를 포함한 친환경차를 미국에서 65만 대 이상 팔았고 올해도 매달 최대 20%씩 판매량이 늘고 있다. 도요타의 미국 HEV 시장점유율은 8월 기준 57%로 캐즘의 수혜를 독차지하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도 이에 맞서 HEV의 수요에 맞춰 판매를 공격적으로 늘리는 전략을 내놨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 HEV 판매량을 2023년 대비 40% 늘어난 133만 대로 잡았다. 기존 생산계획을 수정해 HEV 생산 라인을 대폭 증설해야 가능한 판매 목표다.
이에 따라 신형 모델 출시를 앞둔 기아부터 미국 시장에서 본격적인 HEV 생산 시설 확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시장에서 HEV 판매 증가의 대부분은 현대차가 이끌고 있다. 9월 미국 HEV 판매량은 현대차가 1만 531대로 20.3% 늘었지만 기아는 7034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 개선되는 데 그쳤다. 주력 판매 모델인 쏘렌토 HEV(-25.2%)가 풀체인지를 앞두고 있어 판매량이 저조한 영향이 컸다. 쏘렌토는 2025년 말 또는 2026년 초 풀체인지 모델이 공개될 것으로 시장은 예상하고 있다. 기아로서는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될 텔루라이드 HEV처럼 신모델과 함께 늘어날 HEV 수요에 대응해 신규 라인을 개설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기아가 풀체인지 일정에 맞춰 쏘렌토 HEV를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기아의 미국 HEV 판매량은 2021년 2만 대에서 2023년 7만 3000여 대까지 확대됐다. 현지 HEV 판매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아의 신형 모델들이 시장에 쏟아지면 수요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문제는 미국 시장용 HEV를 담당하는 화성·광명·광주 공장이 국내 판매 차량도 함께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력·설비 등의 문제를 고려하면 수요가 늘어나도 생산을 대폭 확대하기 힘들다. 신형 쏘렌토도 텔루라이드처럼 현지 생산을 통해 늘어나는 미국 HEV 수요에 대응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조지아 공장이 HEV 생산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현재 미국 시장의 볼륨 모델인 쏘렌토 HEV는 화성 1공장에서 쏘렌토 내연기관(ICE) 모델과 라인을 공유하고 있고 카니발 HEV는 광명 1공장, 스포티지 HEV도 광주 2공장에서 동일한 체제로 생산된다. 미국 조지아 공장은 스포티지와 쏘렌토, 텔루라이드 ICE 모델을 생산 중이다. 텔루라이드 라인이 HEV까지 생산할 수 있게 조정되는 만큼 신형 모델 출시를 앞둔 쏘렌토 역시 HEV 라인을 개설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차는 이미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싼타페와 싼타페 HEV를 동시에 생산하고 있다. 기아도 현대차와 같이 미국 시장용 HEV 차량들의 생산을 한국과 미국 투트랙 체제로 전환이 가능하다.
현대차도 메타플랜트 HEV 라인을 개설한다. 나아가 앨라배마 공장에도 신규 라인을 만드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는 현재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싼타페 HEV를 생산하고 나머지 HEV 모델들은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체제다. 현대차가 메타플랜트에서 HEV를 생산할 계획을 밝힌 것도 기아처럼 커지는 미국 시장의 수요를 현지 생산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텔루라이드 HEV와 파워트레인을 공유할 신형 팰리세이드 HEV를 현지에서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 또 미국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투싼 HEV에 더해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SUV HEV 라인이 들어설 수도 있다.
현대차는 “글로벌 주요 거점의 공장을 적극 활용해 하이브리드 차종 투입을 통한 혼류 생산 체제 도입, 부품 공급망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는 계획도 밝혔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공격적인 HEV 생산 체제 재편으로 판매가 늘어나면 이익률 역시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내연기관보다 HEV용 파워트레인의 투자 규모는 작고 가격은 높다”며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면 1대당 판매 마진 역시 올라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