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너지 공룡들이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늦추는 한편 화석연료로 회귀하고 있다. 고금리와 중동 전쟁 등 정세 불안까지 겹치며 불확실한 미래 산업보다는 당장의 먹거리를 확보하는 쪽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탈탄소 미래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석유 공룡들의 변심을 부추기고 있다.
7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영국 최대 에너지 기업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2030년까지 석유·가스 생산량을 대폭 줄이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앞서 2020년 BP는 앞으로 10년간 자사의 화석연료 생산량을 40% 줄이는 대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화석연료 생산 감축 목표를 25%로 한 차례 낮췄고 이번에는 아예 감축 약속을 백지화했다.
로이터는 BP가 친환경 전환 대신 석유 등 화석연료 생산으로 회귀할 계획이라고 전망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BP는 이라크의 신규 유전 프로젝트 3곳에 대한 투자 방침을 논의 중이며 쿠웨이트에서도 일부 유전 지대 재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석유 공룡들의 인수전이 치열한 미국 내륙 퍼미언 분지의 자산 인수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BP의 전략 변경은 최근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의 움직임과 일맥상통한다. 많은 에너지 기업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열풍과 친환경 미래에 대한 준비로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대폭 늘렸으나 러시아·중동 전쟁의 여파와 갑작스러운 고금리 환경에 타격을 입었다. 반면 화석연료에 집중한 기업들은 오히려 높은 수익을 냈는데 BP의 경쟁사인 영국 정유 대기업 셸이 대표적이다. 셸은 지난해 1월 친환경 프로젝트의 축소를 선언하고 화석연료 채굴을 대폭 늘려 역대급 수익을 올렸다. BP의 실적 개선 임무를 받아 올 1월 선임된 신임 최고경영자(CEO)인 머레이 오친클로스 역시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나들고 있는 상황에서 확실한 단기 수익을 보장하는 화석연료로의 회귀를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탈탄소 미래는 느리더라도 결국 가야 할 방향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자금에 여유가 있는 기업들은 몸값이 떨어진 재생에너지 업체 지분을 사들이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이날 노르웨이 국영 석유·가스 회사인 에퀴노르는 세계 최대 풍력해상발전 기업인 오스테드의 지분 10%를 인수해 2대 주주가 됐다고 밝혔다. 오스테드의 현재 주가는 친환경 투자 붐이 일었던 2021년 고점 대비 70% 가까이 하락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