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 수많은 작품으로 이어지는 한강의 이야기 한가운데에는 늘 ‘상처받은 인간, 멀리서 보면 너무도 연약한 인간’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뻔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쉽게 좌절하지도 않고 갑자기 상처와 화해하거나 순조롭게 치유의 손길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아주 느리지만 끈질기게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개를 딸의 눈앞에서 죽게 만든 아버지를 향한 공포와 분노를 잊지 못하고 ‘채식’이라는 저항의 몸짓으로 자신의 트라우마와 대면한다. 그의 저항은 단지 딸의 의지에 반해 개를 죽인 아버지에 대한 분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끝없이 육식으로 된 반찬을 삼시 세끼 해 먹일 것을 요구하며 채식으로 된 반찬을 요리해주면 먹을 것이 없다고 투덜대는 남편을 향한 저항이기도 하다. 육식을 먹어야만 뭔가 제대로 잘 먹은 듯한 포만감을 느끼는 현대인의 탐욕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고 소유하는 모든 것에는 어쩌면 우리가 애써 모른 척하는 연약한 존재들의 피와 눈물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로 그 끔찍한 세상의 불균형과 우리가 매일 저지르고 있는 폭력에 대한 저항이 영혜의 극단적인 채식과 음식에 대한 궁극적 거부로 나타난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트라우마를 다룬 ‘소년이 온다’와 제주4·3 사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인 ‘작별하지 않는다’ 또한 트라우마의 한가운데에서 포기하지 않고 ‘상처의 여기 있음’을 환기시키는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한강의 주인공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테마는 ‘트라우마는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인류의 오랜 화두다. 아무리 용감하게 대면하고 열심히 치료와 상담을 받아도 트라우마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빈자리는 결코 채워지지 않기에 더 고통스러운 진실은 끔찍한 트라우마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치료의 혜택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제주4·3 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은 여전히 끝나지 않는 아픔 속에서 영원히 잃어버린 가족과 친지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한강의 주인공들은 바로 이 ‘트라우마의 끝나지 않는 시공간’ 속으로 마치 영원한 눈물의 수레바퀴만이 끝없이 굴러가고 있는 듯한 트라우마의 한복판에서 ‘지금, 여기’를 살아내고 있다. 아픔을 간직한 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채로.
트라우마의 한가운데서 결코 그 상처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한강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은 끝없는 상처의 길 위에서 서성이는 우리 현대인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지 말아야 할 용기와 희망의 빛을 선사한다. 그렇게 우리가 사랑했던 존재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야기의 힘으로, 문학의 언어로, 비로소 눈부시게 부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