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장 시간인 18분 동안 기립 박수를 받으며 최우수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룸 넥스트 도어’. 이 작품은 스페인 출신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처음으로 선보인 영어 장편 영화이기도 하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그녀에게’ ‘귀향’ ‘브로큰 임브레이스’ 등 뛰어난 영상미와 풍부한 상상력이 바탕이 된 깊이 있는 주제 의식을 다뤄 국내에서도 팬덤이 강하다. 올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국내 처음 선보인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순식간에 전석 매진됐다.
최근 유럽에선 조력 살인, 안락사 등을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스위스에서는 최근 버튼을 누르면 5분 안에 사망하는 안락사 캡슐이 논란 끝에 사용 중단이 될 정도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존엄하며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오직 신에게만 있다는 종교적 가치 등이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안락사라는 불편한 소재와 주제를 따뜻하고 편안하게 연출한 알모도바르라는 세계적인 거장의 품격이 그대로 담겼다. 그의 ‘인생작’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종군기자로 치열하게 살았지만 암에 걸려 투병 중인 마사(틸다 스윈튼)가 안락사를 선택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담담하게 회한을 고백하며 영화는 마사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든다. 자신이 선택한 안락사이지만 홀로 떠나고 싶지 않아 곁에 누군가 있어주기를 원하는 마사. 10대에 낳은 딸과는 거의 남인 채로 살아가고 있어 부탁을 할 수 없고, 겨우 찾아낸 게 바로 친한 친구 잉그리드(줄리언 무어)다. 쉽게 허락하지 않지만 마사가 아름답고 존엄있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며 털어 놓는 숨겨두었던 과거를 하나 하나 듣자 잉그리드는 마사의 부탁을 들어준다.
죽음을 앞둔 미사는 그동안 기사로 쓰지 못했던 전쟁에서 만난 수사들의 사랑을 비롯해 10대에 임신을 하고 딸을 낳을 수밖에 없었던 누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한 일들을 담담하게 털어 놓는다.
영화는 알모도바르 감독 특유의 영상미와 함께 문학적 감수성까지 담아냈다.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의 ‘죽은 사람들(The Dead)’ 속에 등장하는 섬세한 문장들을 독백하며 삶에 대한 회한을 조용히 눈물로 쏟아내는 마사 역의 틸다 스윈튼은 이 작품의 클라맥스를 만들어 냈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깨끗하고 존엄하게 이 세상에 안녕을 고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기본 권리라고 믿는다”며 “안락사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라고 했다. 영화는 깨끗하고 존엄하게 세상과 이별하고 싶은 사람이 원하는 것은 결국 곁에 있어 줄 사람이라고 말한다. 2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