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집회로 주차장된 서울 도심…버스 통행속도 10년來 최저

올 집회 1.4만건…전년비 2000건 ↑

작년 일반차로서 버스 18.1㎞/h

10년새 2.2㎞/h 감소…거북이 운행

전체 집회 절반이 종로·용산 일대

시간·장소 제한하는 규정마련 필요





“주말에 서울 용산의 용리단길 근처로 나들이 갔는데 곳곳에서 열린 시위 때문에 평소보다 20분 이상 더 차 안에 갇혔습니다. 용산이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는데 혼잡한 교통으로 약속 시간에 늦기 일쑤입니다.”



평일·주말을 가리지 않고 정례 행사처럼 이어지고 있는 도심 집회에 시민들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특히 서울의 버스 통행 속도가 과거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무분별한 집회가 일반 시민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를 무작정 제한할 수는 없지만 대중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2023년 서울특별시 차량통행속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버스의 일반차로 통행 속도는 18.1㎞/h로 2013년(20.3㎞/h) 이후 가장 느렸다. 가로변 버스전용차로 통행속도도 지난해 15.2㎞/h를 기록하면서 2013년(20.9㎞/h)에 비해 대폭 감소해 최저치를 경신했다. 서울시 전체 버스 통행 속도는 지난해 18.0㎞/h로 10년 사이 가장 느렸던 2019년 17.9㎞/h와 불과 0.1㎞/h 차이에 불과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광화문 일대 등 도심 지역에서 열리는 대규모 집회의 경우 일부 차선을 점거하는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버스뿐만 아니라 전체 교통 흐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종로 세종대로의 전체 차량 통행 속도는 지난해 21.1㎞/h로 전년 대비 1.2㎞/h 줄었다. 강남 테헤란로의 경우도 지난해 20.0㎞/h로 1년 새 0.7㎞/h 감소했다.

경찰청이 의뢰한 ‘도심 집회·시위에 따른 교통영향 분석 연구’에 따르면 집회·시위 인원이 1만 명 이상일 경우 차량 통행 속도가 약 8㎞/h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평시 대비 37% 감소하는 수준이다.



차도를 점거한 대규모 집회가 차량 통행을 방해하면서 경제적 손실까지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 집회 개최 장소인 광화문 일대를 지나는 한 광역버스 업체 관계자는 “시위가 있을 때는 정상적인 배차가 이뤄지기 힘들다”면서 “교통 체증 때문에 차고지로 차량이 들어오지 않으니 새로운 차량을 내보낼 수가 없는데 이 같은 경우 배차가 빠진 만큼 회사에는 손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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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도 평일과 주말 철도노조, 양대 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교회연합 등 수천에서 수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차도 점거 집회가 신고돼 서울 도심 교통 체증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도한 집회에 따른 사회적 손실 역시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무조정실이 발행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22년 기준 지난 30년 동안 퇴진·사퇴·비리·복직 등 사유로 인한 집회·시위로 발생한 사회적 손실 비용은 1767조 원에 달한다.

이 같은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서울 도심에서 이뤄지는 집회·시위는 코로나19 이후 해마다 늘고 있다. 서울시 경찰청에 따르면 2021년 1만 4309건이었던 개최된 집회·시위가 2022년 1만 5875건, 2023년 1만 7967건으로 늘었다. 올해 8월 기준으로는 1만 3986건 개최돼 지난해 같은 기간 1만 1918건을 넘어 최근 4년간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지에서 집회·시위가 집중됐다. 종로·남대문·용산·영등포·서초·강남경찰서 관할 지역의 도심지에서 열린 집회·시위는 올해 8월 기준 전체 개최 건수의 56.09%를 차지하면서 시민의 불편을 가중하고 있다.

‘집회천국’이 됐다는 자조와 비난이 나오는 상황에서 현행법이 규정하는 집회·시위의 악영향에 대한 규제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행법이 규정하는 제한 조건이 다소 모호해 집회 참여자를 제외한 나머지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 조항을 신설하는 등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12조에서는 ‘관할경찰관서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해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정하고 있지 않다.

지난해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 주도로 교통 소통을 방해하는 집회·시위에 대한 제한 내용을 담은 집시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돼 논의가 이어지지 못했다. 이 의원은 “주요 도로 소통을 위한 제한·금지통고의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집회 주최 측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는 만큼 출퇴근 시간대 등 금지·제한 통고를 할 경우 고려해야 하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집회·시위는 현장에서의 변수가 너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법령에 모든 구체적인 사안을 포함해 규제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라면서도 “다만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과 같이 집회의 시간과 장소를 제한하는 규정을 마련하는 등 조례 제정이나 법안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승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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