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업황에 따라 개별 종목의 주가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는 한 주였다.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하면서 방산업은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반면, 반도체 관련 주들은 맥을 추지 못했다. 특히 삼성전자(005930)는 외국인들이 28일째 매도 포지션을 보이면서 역대 최장 순매도 기록을 경신했다. 투자 전문가들은 오는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양호한 실적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들에 주목할 것을 조언했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8일 코스피는 일주일 전인 11일 종가 대비 3.09포인트(0.12%) 떨어진 2593.82에 거래를 마쳤다. 14일과 15일 코스피는 반도체 주를 중심으로 훈풍이 불면서 소폭 상승했으나 외국인의 매도세에 사흘째 내려 다시 2600선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 주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은 1조 1618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기계·통신·증권·금융·보험 등 업종은 올랐고 전기전자·화학 등은 떨어졌다.
대표적인 방산주인 현대로템(064350)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는 지지난주에 이어 지난주에도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현대로템은 연내 폴란드와 K2전차 2차계약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주가를 거세게 밀어올렸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 갈등 격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남북간 긴장 고조 등으로 최근 증권사들은 연이어 방산주들의 목표가를 올려잡는 분위기다. 방산업종 외에 금융주들도 양호한 실적과 주주환원 확대 기대감을 타고 강세를 보였다. KB금융(105560)·메리츠금융지주·한국금융지주·JB금융지주도 장중 신고가를 새로 썼다.
반면 반도체와 2차전지 관련 종목들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14일 6만 원대를 회복하는 듯 했으나 16일 2%대 급락하면서 다시 ‘5만 전자’로 주저앉았다. 외국인은 삼성전자에 대해 지난달 3일부터 28일째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다. 역대 최장 매도 기록이다. 이 기간 순매도 규모는 11조 5813억 원에 달한다. 삼성전자 부진의 원인으로는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엔비디아 납품 지연, 스마트폰과 PC 등 D램 수요 부진 등이 꼽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기 기업 ASML이 15일(현지 시간) 시장의 기대치를 크게 하회하는 실적 전망을 내놓은 것도 악재를 더했다. 2차전지 역시 테슬라가 지난주 공개한 자율주행 차 로보택시가 시장의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한 여파로 급락했다.
이에 투자 전문가들은 실적 전망이 양호한 기업들에 대한 선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현재까지 실적을 공개한 기업들 중 79%가량이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한 반면 한국은 본격적인 실적 발표를 앞두고 전망치가 대체로 하향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코스피의 3분기 순이익 전망치는 최근 2주간 0.5%(50조 4000억 원→50조 1000억 원) 하향 조정됐고 4분기는 4.0%(45조 9000억 원→44조 원) 하향됐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원은 유틸리티, 통신, 증권, 조선, 상사 등 업종이 최근 2주간 3~4분기 순이익 전망이 모두 올랐다고 설명했다.
이번 주에는 한국과 미국의 주요 기업들의 실적 발표가 대거 예정돼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22일), 삼성물산(028260)·우리금융지주(316140)(23일), SK하이닉스(000660)·현대차(005380)·기아(000270)·KB금융(24일), 신한지주(055550)·하나금융지주(086790)·현대모비스(012330)(25일) 등이 3분기 실적을 공개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알파벳·테슬라·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이 실적을 공개한다.
NH투자증권은 이번 주 코스피 지수 예상 범위를 2550~2680으로 제시했다. 지수 상승 요인으로는 AI 반도체칩 수요 호조 지속, 밸류업(기업가치 제고계획) 프로그램 동참 기업의 확대 가능성을 꼽았다. 하락요인으로는 국내 기업들의 3분기 실적 부진 우려, 외국인 수급 불안 등을 제시했다.
홍지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ASML의 실적 쇼크는 인텔과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투자 속도 조절,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번 주는 TSMC가 예상치를 크게 웃돈 실적을 발표하며 반도체 업황도 양극화가 본격 시작됐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한 주였다”고 분석했다. 이어 “TSMC의 호실적 발표 이후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ARM이 일제히 상승했듯, 반도체 차별화 장세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시장이 기대하는 통화정책의 괴리가 좁혀지면서 글로벌 증시는 완만한 상승세를 진행하고 있다”며 “유럽중앙은행(ECB)의 9월, 10월 연속 금리 인하에 이어 20일 중국 인민은행의 대출우대금리(LPR) 금리까지 인하된다면 글로벌 통화정책발(發) 기대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증시는 미국 대선의 영향권에 접어들기 시작할 10월 마지막 주 전까지 천천히 올라갈 것”이라며 “11월 5일 미국 대선을 기점으로 연말까지 증시는 쉬어갈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