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5월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한일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주요 안건으로 논의됐지만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데 비해 일본 정부가 소극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는 신중한 가운데 국내 기업의 피해가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우려에 FTA 경제성 재평가에 돌입했다.
22일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FTA 후속 협상일을 잡기 위해 중국·일본 측 카운터파트와 실무 접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측이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협상일을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비공식적으로 중국·일본 측과 접촉 중”이라며 “현재까지 후속 협상일은 결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측이 소극적인 것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의 한 통상 전문가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일본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FTA 체결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표면적으로 한일중 FTA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자칫 하다가 득보다 실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 청소기 등 가전 부문에서 기술력이 대폭 성장한 중국 제품이 국내에 몰려올 뿐 아니라 소재·부품·장비 산업에서 일본 기업이 국내 안방 점유율을 대폭 높일 수 있어서다. 정부는 이에 최근 한일중 FTA에 대한 경제성 재평가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경제 타당성 평가 당시만 해도 한일중 FTA 체결 시 우리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0년간 1.17~1.45%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최근 중국의 첨단 제품 기술력 등이 급속도로 향상돼 우리 기업이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은 일본에 뒤지는 국내 소부장 기업 등에 상당히 큰 부담”이라면서 “중국과도 기술력 격차가 거의 없어 고심이 깊다”고 언급했다.
한일중 FTA가 아닌 세계 최대 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서도 유사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RCEP는 한일중을 포함해 호주, 뉴질랜드,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 등이 참여한 FTA다. 국내 한 통상 전문가는 “미중 갈등 양상 등 복잡한 국제 역학 관계를 고려하면 한일중 FTA가 속도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입장에서도 한일중 FTA가 확실히 도움이 될지 명확히 점검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