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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부재에 이공계 기피…"4대 과기원 육성 등 유인책 필요"

[과학자본 축적시대] <2> 과기인 양성 기반 강화

R&D 투자규모 세계 6위 달하지만

두뇌유출지수는 30위권 고착화

초등생 과학자 희망도 16위로 뚝

대학·연구기관 지원 확대 절실

정부 4개 과기원 혁신안 등 추진





이공계 기피·이탈 현상의 근본적 원인은 ‘비전의 부재’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저출생과 의대 쏠림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청소년들이 과학자를 꿈꾸고 우수 인재들이 오래 연구개발(R&D)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인 보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공계 학생에 대한 개별적인 지원을 넘어 과학기술인을 키우고 해외 인재를 유치·활용하는 인프라로 대학과 연구기관의 경쟁력을 높여야 ‘과학 자본’을 축적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스위스 연구기관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두뇌 유출 지수’는 세계 30위에 머물렀다. 두뇌 유출 지수는 국내 고급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순위가 낮을수록 유출이 심하다는 의미다. 한국의 순위는 2019년 30위에서 2021년 24위로 올랐지만 다시 지난해 36위까지 떨어지는 등 30위 안팎 구간에 정체해 있다. 정부의 R&D 투자 규모는 세계 6위,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으로는 2위를 자랑하지만 인재 유출의 고착화를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공계를 이끄는 고급 인재마저도 국내에서 비전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비전의 부재는 인재 유출뿐 아니라 수혈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는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순위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초·중등 진로교육 희망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순위에서 과학자는 2009년 5위였지만 2019년 13위로 밀려났고 지난해에는 16위까지 떨어졌다. 소득과 지위 같은 구체적인 조건을 따지기 전부터도 스타 과학자 등 간접적으로 이공계의 비전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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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달 발표한 ‘과학기술 인재 성장·발전 전략’은 이 같은 한계 극복을 위해 경제적 보상은 물론 직업에 대한 고용 보장과 예우 강화를 포함해 명확한 이공계 비전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우선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대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의 포스트닥터(박사후연구원) 채용 규모를 현재 2034년 1500명으로 10배 늘린다. 대학부설연구소까지 포함해 10년간 2900명을 채용한다. 포스트닥터는 내년 1월부터 과학기술인공제회 가입이 허용돼 연구원의 지위를 보장받는다.

은퇴한 연구자가 중소기업 등에서 일할 수 있는 ‘정년 후 재고용 제도’의 범위가 확대된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남성 연구자를 위한 과학기술전문사관 등 병역 혜택도 늘린다. 과학기술유공자의 국립묘지 안장 심의 시 우대해주고 주요 거리·시설에 이름을 붙이는 등 예우를 강화한다. 또 국가 R&D에 참여하는 이공계 대학원생은 석사 월 80만 원, 박사 110만 원의 연구생활장려금을 받는다. 직무발명보상금의 비과세 한도를 올해 연 700만 원으로 높이고 연구자 내년 임금 실태를 조사하는 등 연구 성과에 대한 보상도 강화해나갈 방침이다.

다만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과학 자본 축적의 관점에서 학생·연구자 개인에 대한 처우 개선 이상의 지원 대책이 더 필요하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학생·연구자를 기르고 연구 인프라를 제공해 실질적으로 이공계 비전을 실현할 대학과 연구기관 자체의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려 대학의 역할이 점차 커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만 6~21세의 학령인구 수는 2000년 1138만 명에서 2020년 789만 명으로 30%가 줄었고 20년 후인 2040년에는 다시 절반 수준인 447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더 적은 학령인구로 인재 풀을 유지하려면 과거처럼 전체 학생의 상위 10~20%가 아니라 40%까지를 이공계를 이끌 우수 인재로 길러낼 정도로 교육의 질 확보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무환 전 포스텍 총장은 “한국형 스타이펜드(연구생활장려금) 같은 개인에 대한 지원책뿐 아니라 실험실 같은 인프라 확대 등을 통해 상위 40% 학생들을 한국을 이끌고 갈 우수 인재로 키워야 한다”며 “미국과 달리 한국 대학은 1인당 공교육비가 고등학교보다도 낮은 실정인 만큼 (정부의) 투자 확대를 통해 대학이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점점 치열해지는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에도 대학이 거점 역할을 한다. 중국의 글로벌 인재 유치 계획인 ‘천인계획’으로 유출된 국내 인재 대부분이 칭화대 등 중국 명문대로 이직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국내 이공계 대학들은 물론 최상위권인 KAIST에서도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국내총생산(GDP)도 2034년이면 마이너스(-) 성장에 접어들 것”이라며 “국가의 세수가 늘지 못하고 그나마도 고령층 지원 비용이 늘어 결국 대학의 재정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 인재 성장·발전 전략의 후속 조치로 조만간 ‘4대 과기원 발전 방안’을 마련하는 등 대응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4대 과기원이 지난해 공공기관에서 해제된 만큼 해외 석학 등 세계 최정상급 인재를 더 자유롭게 영입하고 3대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유망 기술인 인공지능(AI)·양자·바이오 분야 연구를 강화하는 식의 지원책이 예상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4대 과기원이 3대 게임체인저 육성을 선도하고 글로벌 톱(상위) 연구 중심 대학으로 도약하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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