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막식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올림픽 개막식으로 꼽힌다. 하지만 개막식을 공개했을 당시 세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이 쇼를 정의할 기존의 예술 방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프랑스 언론은 이 쇼를 ‘드쿠플러리(Decoufleries)’라고 소개했다. 드쿠플레의 방식, 필립 드쿠플레가 연출한, 드쿠플레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의미다.
복합예술공연의 거장 필립 드쿠플레가 자신의 대표작 ‘샤잠!’으로 8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선다. 22일 ‘LG시그니처와 함께하는 필립드쿠플레 샤잠!’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드쿠플레는 “현대무용 공연을 본 후 관객들이 ‘내가 뭘 봤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질색”이라며 “우리의 일상에 그렇게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공연을 통해 산소방울을 접한 것 같은 행복감에 젖어서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드쿠플레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올림픽 개막식으로 꼽히는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막식 에술감독이자, 태양의 서커스 ‘아이리스’ ‘파라무어’의 연출자다. 국내에서는 2014, 2016년 ‘파노라마’ ‘콘택트’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기도 했다.
드쿠플레의 삶은 그야말로 다채롭다. 만화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15세 학교를 자퇴하고 팬터마임의 대가 마르셀 마르소가 설립한 국제 마임 학교에서 마임을 배웠다. 이후 애니 프라텔리니의 프랑스 구립서커스 학교에서 서커스를, 머스 커닝햄에게는 현대무용을 배웠다. 알윈 니콜라이로부터 빛, 소리 등의 무대연출을 익히며 다양한 장르의 영향을 받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2세의 젊은 나이에 무용단 DCA를 설립했다.
드쿠플레가 연출하고 직접 출연하는 ‘샤잠!’은 1998년 초연 이후 전세계 주요 극장에서 200회 넘게 공연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드쿠플레가 이끄는 무용단 DCA 컴퍼니의 최고의 히트작이기도 하다. 25~27일 LG아트센터서울에서 공연될 ‘샤잠!’은 드쿠플레가 무용단 창단 35주년을 기념해 2021년 제작한 리뉴얼 버전이다.
드쿠플레는 초연에 함께한 무용수와 연주자들을 다시 불러모아 새로운 의미를 더해 작품을 새롭게 복원했다. 드쿠플레는 이번 공연에서 ‘시간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할 계획이다. 그는 “창립단원들과 함께 나이들어가고 있는 제가 어떻게 하면 세월이 지나도 ‘순간의 예술’인 무용을 보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20여 년 전 무대 위 스크린에서 촬영된 오리지널 ‘샤잠!’의 영상과 중년이 된 무용수의 실제 움직임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드쿠플레는 “20대였던 여성 솔로 무용수가 50대가 되어 이번 공연에서 솔로 춤을 출 것”이라며 “과거에 비해 기술력은 95% 정도밖에 발휘할 수 없지만 나머지 5%는 우아함,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일궈낸 존재감이 채워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드쿠플레는 “공연을 볼 계획이라면 본공연 시작 15분 전에 미리 도착해 로비에서부터 펼쳐지는 공연을 꼭 관람하길 권한다”고 말했다. 본공연이 시작되기 전 로비에서는 커다란 털모자를 쓰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지휘봉을 흔들며 퍼레이드를 펼친다. 북을 두드리며 트럼펫을 연주하는 라이브 밴드는 그 뒤를 따른다.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무용수들의 난이도 높은 움직임과 거울, 액자, 영상 등을 화룡한 시각효과들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은 실재와 가상의이미지가 혼합된 놀라운 순간을 만나게 된다. 필립 드쿠플레이는 오프닝 공연에서 직접 무대에 올라 도입부에서 즉흥댄스를 보여준다. 한국인 무용수 예호승이 통역이자 게스트 무용수로 함께 출연한다.
사실 드쿠플레의 모든 작품이 그렇듯 ‘샤잠!’역시 하나의 장르로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 다만 드쿠플레는 “공연을 본 후 관객들이 무용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무용은 인간의 신체가 시간의 시련을 겪어도 흔적이 남지 않고 아름답게 보존될 수 있도록 해주는 아름다운 움직임”이라며 “50대 무용수가 추는 춤을 보면서 신체를 움직이는 것의 기쁨을 깨닫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