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책임자인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제때 주지 않은 인건비가 6000억 원(2023년 기준)이상 쌓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안정적인 인건비를 지출하기 위해 적립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가 연구개발(R&D)예산 증가율보다 인건비 적립 증가율이 압도하는 기형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자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섰다. 학생 인건비를 무작정 쌓아두기 보다 연구자인 학생들에게 더 많이 지급해 연구의 연속성을 보장해 주겠다는 취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0일 가톨릭대에서 이공계 학생과 연구자 및 출연연 전문가 등과 과도하게 적립된 학생인건비가 학생연구자에게 지급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학생인건비 잔액제도 개선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정통부는 학생인건비를 1년치 이상 적립하고 있는 연구책임자를 대상으로 연말기준 잔액에서 학생인건비 1년치 지급분을 제외하고 20%를 기관계정으로 이체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예를 들어 학생인건비 잔액이 7200만 원, 1년 간 지급된 총인건비가 4800만 원인 연구책임자는 7200만 원에서 4800만 원을 제외한 2400만 원 가운데 20%인 480만 원을 기관계정에 이체해야 한다. 과기정통부는 “대학이 기관계정을 구축하는 시간 등을 고려해 1년 간의 유예기간을 부여할 것”이라며 “과거 연구책임자 계정에 적립됐던 인건비를 기관에서 통합관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관계정에 이체된 학생 인건비 지급의 활용은 학생인건비에만 국한해 사용하되 기관에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게 과기정통부의 구상이다. 다만 유예 1년 이후에도 기관적립을 하지 않을 경우 적립금은 전액 국고로 환수된다.
정부가 이처럼 제도 개선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적립금이 지나치게 쌓였고 일부 교수의 경우 인건비를 개인돈으로 사용하는 일탈까지 벌어지는 등 부작용이 커진다고 판단해서다. 지방 국립대 A교수의 경우 2017년 5월부터 5년 가까이 학생연구원 22명에게 지급해야하는 인건비를 자신이 임의로 사용하려다 덜미가 잡히기도 했다. 증가율도 가팔랐다. R&D예산이 한 해 8.9%(29조 7770억 원, 2022년 기준)증가하는 동안 인건비로 적립된 금액은 17.9%(5895억 원)가 늘었다. 이렇게 쌓인 학생인건비가 지난해 6000억 원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연구책임자 85%가량이 5000만 원 미만이거나 1년치 지급분 미만을 적립했지만 일부 교수는 10억 원 이상을 적립한 경우도 있었다. 과기정통부 관계는 “지난해 기준 10억 원 이상을 적립한 연구책임자는 10명, 가장 많이 적립한 경우는 50억 원 이상을 쌓아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자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이 지난 8월 서울대에서 열린 ‘이공계 대학원 연구생활장려금 대학원생 간담회 계획(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연구책임자인 교수들이 사용하지 않고 쌓아둔 학생인건비 잔액(적립금)은 교수들의 ‘쌈짓돈’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연구책임자들도 인건비 적립을 하는 이유가 있다. 공청회에 참석한 한 연구책임자는 “학생인건비 계정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은 범죄인데 쌈짓돈처럼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라며 “적립금은 매달 학생들에게 지급할 인건비가 끊기지 않도록 최소한의 금액을 저축하는 개념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8월 제도 개선 방향을 발표한 뒤 수차례 간담회와 설명회를 가지면서 연구과제의 편차가 발생하고 지속적이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해 적용대상과 지급분의 기준을 재정비했다. 박시정 과기정통부 연구제도혁신과장은 “본래 모든 연구책임자를 대상으로 삼았지만 1년치 지급분 이상을 적립하고 있는 연구책임자로 대상을 조정하고, 이체금액은 연말 기준 잔액에서 1년치 지급분을 제외하도록 했다”며 “1년치 지급분을 제외한 것은 적어도 6개월 이상의 적립금은 있어야 인건비를 안정적으로 지급할 수 있다는 의견을 합당하게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의 제도개선 방안을 연말까지 고시개정을 통해 2025년도 잔액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대상 대학은 인건비 적립 특례를 받았던 기존 62개 대학이다. 이들 가운데 현재 기관계정이 구축된 14곳으로 정부는 규정 시행 전까지 기관계정을 상시 지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