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혹독한 구조조정을 실시한 SK그룹이 6개월 만에 순차입금 9조 원을 줄이며 재무 건전성 개선에 성공했다. SK는 앞으로도 추가 리밸런싱(사업 재편)과 운영개선(O/I)을 통해 인공지능(AI)·반도체·에너지 등 핵심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219개에 육박하는 계열사는 합병·매각을 통해 연말까지 10% 이상 감축한다.
SK그룹은 지난달 31일부터 사흘간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진행한 ‘2024 CEO세미나’에서 이같은 내용의 경영전략이 공유됐다고 3일 밝혔다. 이번 세미나에는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CEO들은 그룹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및 운영개선 성과를 점검하고 후속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SK는 우선 올해 리밸런싱을 통해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됐다고 밝혔다. 올 1분기 말 85조 원을 넘겼던 SK그룹의 순차입금은 손익 및 현금 흐름 개선, 자산 매각 등 운영개선 활동을 통해 올 2분기부터 감소세로 돌아서 3분기 말 기준 76조 2000억 원까지 낮아졌다.
SK 경영진은 이 같은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추가 리밸런싱 작업을 통해 AI·반도체와 같은 미래 성장 분야에 투자 재원을 집중하기로 했다. 최 회장은 “차세대 챗GPT 등장에 따른 AI 시장 대확장이 2027년을 전후해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SK가 성장 기회를 잡으려면 현재 진행 중인 운영개선을 서둘러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K가 보유한 기술력과 파트너와의 협력을 통해 가장 싸고 우수한 AI 데이터센터(DC)를 만들고 그룹 AI 사업을 글로벌 스케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게 최 회장의 구상이다. 그는 SK의 향후 핵심 과제로 △반도체 설계·패키징 등 AI 칩 경쟁력 강화 △고객 기반의 AI 수요 창출 △전력 수요 급증 등에 대비한 ‘에너지 솔루션’ 사업 가속화 등을 제시했다.
SK는 또한 잉여현금흐름(FCF) 극대화 등 재원 확보를 목표로 내걸었던 ‘O/I 1.0’에서 제조·마케팅 역량을 제고하는 ‘O/I 2.0’을 거쳐 기술 역량 중심의 ‘O/I 3.0’으로 진화를 이어갈 방침이다. 최 회장은 “운영개선은 단순히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본원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과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같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SK하이닉스가 지목됐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 7조 원의 역대 최대 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등 시장 선도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낸드플래시 생산기지인 청주 M15를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라인으로 구축하는 과감한 의사 결정 △데이터 중심 의사 결정을 통한 수익성 극대화 △‘원팀 정신’ 기반 아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조직 문화 등이 밑거름이 됐다는 분석이다.
SK는 고강도 리밸런싱 작업을 통해 지난해 말 기준 219개였던 계열사 수가 올해 말까지 1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회사는 관리가 가능한 범위 내로 계열사를 정리하기 위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SK온·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엔텀 합병, SK에코플랜트·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에센코어 통합 등을 추진했다.
합병 기업들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유정준 SK온 대표이사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SK온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양 사는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해 ‘글로벌 배터리&트레이딩 회사’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은 한편 이날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베트남 최대 식음료·유통기업 마산그룹의 지분 7628만 주(5.05%)를 매각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