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구조가 오보였다는 게 알려지고서 '이건 안 되겠다' 싶었어요. 바로 다음 날 새벽에 출발했어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 한재명씨가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49세.
3일 한씨의 동료 잠수사였던 황병주씨는 "지난 9월 25일 이라크 공사 현장에서 한씨가 산업재해로 숨졌다"며 현지 사정이 좋지 않아 지난 2일에야 시신을 국내로 운구했다고 전했다.
197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해병대 출신 민간 잠수사로 활동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같은달 19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도착, 21일 첫 잠수를 시작했다. 두 달여 동안 구조 활동을 펼치고 희생자들을 수색했다. 당시 한씨처럼 두달여간 현장을 지킨 민간 잠수사들은 25명. 이들 덕분에 희생자 299명 중 235명의 시신이 바다 위로 올라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구조활동 이후 한씨는 뼛속 혈관에 혈맥이 통하지 않아 뼈가 썩는 잠수병인 골괴사와 트라우마에 시달려 생업을 떠나야 했다. 초기 인력이 적을 때 안전 지침을 지키지 못한 채 무리를 한 탓이었다. 해군은 하루 8시간 이상 잠수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안전 지침을 마련해 두고 있지만 당시 한씨 등 민간 잠수사들은 수색 초기 12시간 넘게 잠수를 강행하다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2018년 나온 다큐멘터리 ‘로그북-세월호 잠수사들의 일기’에서 한씨는“어쩌다 수면제가 떨어져서 안 먹으면 악몽을 세번 연속 꿀 때가 있다. 편안히 잠들고 싶어 자꾸 의존한다”며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내보이기도 했다.
황씨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활동을 한 민간 잠수사 25명 중 한씨를 포함해 8명이 골괴사를 앓았다. 다만 지원 대상으로 인정돼 국가의 치료비를 지원받은 사례는 없다. 과거 한씨는 해양경찰청을 상대로 산업재해 신청도 했으나 구조 활동 중 발생한 질병과 상해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경기 화성함백산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 4일 오전 7시4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