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처럼 벤처·스타트업 생태계가 고도화되려면 한국에서도 테크스타즈, Y콤비네이터 같은 대형 액셀러레이터(AC)들이 등장해야 합니다.”
전화성(사진)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장 겸 씨엔티테크 대표는 13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이렇게 강조했다. 될성부른 떡잎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AC산업이 성장해야 더 많은 글로벌 유니콘이 탄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 대표는 국내 AC의 선구자로 불린다. 2011년 이후 씨엔티테크는 쿠캣, 더스윙, 아워박스 등 490여 개 기업에 지분 투자를 했고, 5000개 이상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운용자산(AUM)은 국내 AC 중 최대 규모인 1200억 원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 받아 전 대표는 올해 초에는 초기투자액샐러레이터협회 1대 회장으로 임명됐다.
씨엔티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대기업 등과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약 8개 기업과 투자조합을 공동으로 결성했다. 전 대표는 “초기에는 창업자 대상으로 보육 프로그램만 운영했지만, 직접 투자까지 책임져야 스타트업이 고속 성장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면서 “대기엽 역시 스타트업을 단순 보육 대상으로 보지 않고 기술 애로사항 등을 해결할 파트너로 점차 인식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씨엔티테크는 평균 30~40%를 직접 출자한다. 가령 2021년 30억 규모로 결성된 '한국타이어-씨엔티테크 제1호 모빌리티 스타트업 투자조합'에는 한국타이어가 20억원, 펀드 운용사인 씨엔티테크가 10억 원을 출자했다. 별도의 추가 출자자(LP) 없이 한국타이어와 씨엔티테크가 펀드 전액을 출자한 것. 펀드 운용사가 출자액의 3분의 1 가량을 자기자본으로 투자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벤처펀드는 5% 안팎으로 운용사가 자기자본을 출자한다.
올해는 아워홈과 손잡고 푸드테크 육성에 나섰다. 아워홈 12억 원, 씨엔티테크가 8억 원을 각각 출자했고 식음료, 로봇과 AI, 빅데이터 기술에 강점이 있는 푸드테크 기업을 발굴해 투자할 계획이다.
이처럼 오픈 이노베이션을 선도하는 비결로는 철저한 사업 검증을 꼽았다. 전 대표는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핵심 기술을 10~20가지로 정리한 뒤 이에 걸맞는 아이템을 준비 중인 창업자 발굴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다. 전통 기업을 거래처로 만들 수 있는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씨엔티테크는 업계 맏형답게 투자 혹한기임에도 극초기 기업 대상 투자를 늘리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78개 기업에 120억 원을 투자한 데 이어 올해는 약 100개 기업에 200억 원을 투입했다.
그는 “일반 VC들이 시리즈 A, B 투자를 대폭 줄이면서 폐업 위기에 놓인 스타트업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투자시장은 얼어붙었지만 다행히 전도 유망한 스타트업은 꾸준히 등장하고 있어 ‘우리라도 나서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난다’는 위기의식 아래 투자 규모를 오히려 늘렸다”고 전했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 씨엔티테크는 내년 상반기 상장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전 대표는 말했다. 그는 “AC라는 사업은 상장하기에 충분한 저력을 지닌 업종이다. 업력이 쌓이면서 보육서비스 매출과 투자조합 운용·관리보수가 매년 늘고 있다”면서 “두 사업의 매출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에 회계상 투자 평가이익(투자한 기업의 주식가치가 올라 그 차액을 매출과 이익으로 잡는 것)은 거의 반영하지 않고 있다. 평가이익을 빼도 현금흐름상 이익도 잘 나와 상장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상장 이후에는 중국을 비롯해 홍콩, 베트남, 싱가포르 등의 동남아 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라며 “AC사업을 오랫동안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량 스타트업을 판별하고 보육하는 모든 과정을 소프트웨어(SW)로 구현했다. 이를 글로벌 시장에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형태로 제공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씨엔티테크의 지난해 매출액은 250억원, 영업이익은 90억원이다. 'AC 1호' 상장을 목표로 스팩 상장 방식도 적극 고려하고 있다. 합병 기업가치는 약 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그는 업계와 정부의 가교 역할에도 발 벗고 나서겠다는 각오다. 전 대표는 "모태펀드에서 초기 기업 투자 전용 펀드에 더 많은 자금을 출자할 수 있도록 소통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모태펀드가 신생·소형 벤처캐피털(VC)에 출자하는 '루키리그'의 경우 VC와 AC가 함께 경쟁하는 구조여서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떨어지는 AC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AC를 위한 전용 펀드를 만들어 모태펀드가 지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협회는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외 거점 마련에도 힘쓸 계획이다. 전 대표는 "최근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중국의 초기 기업 지원기관과 협약을 맺고, 국내 스타트업이 해당 지역에 진출할 때 도움을 받도록 하고 있다"며 "반대로 해외 스타트업이 국내에 진출 희망을 희망할 경우에는 협회가 거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인식이 떨어지는 AC의 직업적 매력을 알리는데도 앞장서겠다는 마음도 감추지 않았다. 전 대표는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했다. 한 분야를 깊게 파고 드는 공학도의 삶도 매력적이지만 여러 분야를 공부하며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었다”면서 "투자를 하다 보면 간접적으로 사업 경험을 하게 된다. 직접 사업을 했다면 아마 5개 정도 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저희가 약 500곳에 투자했으니, 원래 인생 대비 100배 더 다양한 삶을 누려본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