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는 역사적 저점이지만 성장 모멘텀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강한 제조업에 인공지능(AI) 기술이 깊숙이 들어간다면 전 세계 스마트머니는 다시 한국으로 유입될 것입니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은 이달 18일 서울 종로구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산업 지형도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대전환 시대에 한국 경제에 성장 담론을 부활시켜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홍 의장은 대우증권 공채로 입사해 리서치센터장을 거쳐 사장까지 오른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자 21대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간사로 활약한 대표적 ‘경제통’이다. 최근에는 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을 맡아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평생 시장과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학 연구자였던 그는 22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후 친정인 여의도가 아닌 종로에 연구실을 차렸다. 홍 의장은 글로벌 강세장에서 유독 죽을 쑤고 있는 한국 증시에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홍 의장은 “한국 증시가 정체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지속돼온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가 코로나19 대유행을 만나 공급망 부족 덕을 보며 반짝 성장하는 듯했지만 산업 경쟁력은 십수 년째 정체돼 있었다는 것. 최근 반도체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급락세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먼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유독 한국 증시만 고립됐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강조했다. 홍 의장은 “일본 증시가 많이 올랐다지만 이제 겨우 1990년 주가 수준이고 TSMC 비중이 큰 대만은 AI 반도체로 인한 반짝 상승일 뿐, 바꿔 말하면 반도체가 없으면 증시도 끝”이라고 설명했다. 즉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증시는 코로나 대유행 시기 살포했던 역사적 유동성을 회수하는 과정 속에서 공통적으로 후유증을 앓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만은 다를까. 홍 의장은 “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데 압도적 성과를 보인 기업들은 전부 미국에 있다”며 “투자자들이 미국 시장으로 몰려가는 것은 이 때문으로, 한국 증시가 특별히 문제가 있어 발생하는 현상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제조업은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진국에서만 할 수 있다는 인식을 AI가 바꾸고 있는 점도 우리로서는 위험 요인이다. 그는 “미국도 AI를 접목시킨 휴머노이드 로봇을 제조하고 공장을 만들며 자국에서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며 “트럼프 당선으로 이런 움직임은 더 확산될 것이고 이는 제조업·물류 등이 강한 한국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한 법. 홍 의장은 “AI가 전 산업에 깊숙이 스며들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적극 나선다면 제조업 강국인 우리에게 커다란 기회로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AI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분위기를 조성하고 AI 인력 확충을 위한 교육개혁을 실시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초등 의대반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게 아니라 AI 의사를 만드는 공학도를 길러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보기술(IT)부터 자동차, 문화까지 한국처럼 산업 포트폴리오가 잘 짜여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며 “기존 제조업에 AI가 구석구석 침투해 제대로 작동하는 환경만 조성된다면 성장 모멘텀이 살아나 전 세계 스마트머니는 다시 한국을 향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보다 먼저 사회 리더층이 절박함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홍 의장은 “산업화 시대를 겪은 리더 그룹과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 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라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양극단만 두꺼워지는 아령 사회가 되고 있다”며 “리더 그룹이 혁신에 대한 비전을 갖고 모두를 이끌어나가려는 시대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장기 투자 문화를 조성하려는 정부와 국회·기업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도, 금융 당국도 장기 투자를 이끄는 유인을 내놓지 않고 유일한 장기 투자 기관인 국민연금 역시 기금 고갈 우려로 국내 증시에서 발을 빼고 있는데 밸류업이 될 리 만무하다”며 “긴 호흡에서 장기 투자 시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나아가 상법 개정 등 장기 투자 문화를 유인하는 다양한 금융·사회 개혁이 차근차근 이뤄져야 진정한 밸류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