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대 경제성장 가능성에 대한 경고음이 잇따르는 가운데 전력 판매량과 신용카드 사용액처럼 경제 상황을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보조 지표에서도 민간소비와 건설 경기 부진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 지표의 경우 정부의 공식 통계보다 더 최근의 자료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경기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25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9월 산업용 전력 판매량이 1년 전보다 2.8% 감소한 2만 3728GWh로 집계됐다. 1~9월 누적 판매량으로 보면 전년 동기 대비 1.6% 줄었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한전의 연간 산업용 전력 판매량은 2023년(-1.9%)에 이어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 생산·판매량은 경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표적인 간접 지표로 꼽힌다. 경기가 좋을수록 전기 수요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주간경제지표(WEI)와 독일 주간활동지수(WAI) 같은 해외 속보성 경기지표에서도 전력량을 주요 참고 통계로 활용한다.
실제로 한전의 산업용 전력 판매 실적이 위축된 것도 일부 제조업의 경기 부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9월 한전이 제조 업체에 판매한 전력량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 줄어든 2만 1248GWh로 나타났다. 1~9월 누계로 봐도 1.9% 감소한 수치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특히 건설 경기 부진으로 철강·시멘트 산업 쪽의 판매량이 줄어든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분기 건설투자는 전기보다 2.8% 감소해 2개 분기 연속으로 내림세를 나타냈다.
산업용 전력 판매량에서 확인할 수 있듯 철강 생산량은 건설업 부진에 크게 위축된 모습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철근 생산량은 591만 2000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9% 줄었다. 9월 한 달 생산량만 놓고 봐도 1년 전보다 17.7% 감소해 2월부터 8개월 연속 전년 대비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H형강도 1~9월 누적 생산량이 182만 6000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7% 축소됐다.
H형강과 철근은 모두 건설 현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철강 제품이다. 전기를 쓰는 전기로를 활용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올해 1~9월 전기로를 통한 조강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11.7% 줄었다. 여기에 중국에서 저가 제품이 대거 수입되면서 열연강판(-8.6%)과 같은 다른 철강 제품의 생산량도 함께 감소하는 모습이다.
민간소비를 짐작할 수 있는 다른 지표들도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통계청과 신한금융그룹에 따르면 11월 2~8일 기준 신용카드 이용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9% 감소했다. 네이버·카카오페이 같은 전자 지급 서비스 충전액도 같은 기간 7.7% 줄었다.
여신금융협회의 카드 사용 데이터에서도 소비 둔화 흐름이 확인된다. 여신협회에 따르면 올해 1~10월 개인의 국내 신용·체크·직불카드 이용 금액(일시불·할부 포함)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7% 늘어난 752조 5040억 원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지난해 1~10월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6.9%)에 비해서는 증가 폭이 둔화했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경기심리는 혼조세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한은 경제심리지수(ESI)는 전월보다 1.2포인트 하락한 92.5를 기록했다. ESI 순환변동치는 93.5로 전달 대비 보합세를 나타냈다. ESI는 기업·소비자 심리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한은이 개발한 지수로 100을 밑돌면 민간의 경제심리가 과거 평균보다 나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면 지난달 뉴스심리지수는 100.61로 전월보다 1.77포인트 올라 3개월 만에 반등했다. 뉴스심리지수는 한은이 50여 개 언론사의 경제 기사 문장을 매일 1만 개씩 추출해 지수화한 것으로 100보다 크면 경제심리가 과거 평균보다 낙관적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내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수출과 무역 흑자에 얼마나 영향을 주느냐”라며 “기본적으로는 부정적 요인이 크다고 보고 있지만 조선 등 일부 항목과 중국 대체지로서의 수요 확대가 있을 수 있어 전체적인 상황을 함께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