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강제하는 규칙의 체계이다. 헌법, 민법, 형법, 상법 등 법은 사회의 안녕을 도모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법 적용이 모두에게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불만도 우리 사회에서 끊이지 않는다. ‘법이 실제 부자와 권력층을 위해 쓰이는 것 아니냐’는 고정관념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법치주의’ 사회에서 법은 공기처럼 꼭 필요한 존재이다. 그만큼 법의 개인 권리 보호, 분쟁 예방·해결 등 순기능을 살려나가는 게 우리의 과제다.
최근 ‘법 쫌 아는 10대’ 라는 책을 법관 출신 변호사 아버지와 현직 교사 딸이 공저해 눈길을 끈다. 이들은 ‘법이 왜 생겨났고 왜 필요하고 왜 지켜야 할까?’ 라는 화두를 던진다. 김택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와 김나영 서울 양정중 교사는 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합동 인터뷰에서 “‘함무라비 법전’이나 ‘베니스의 상인’처럼 법에 관한 오해와 편견이 많다”며 “법을 제대로 알게 되면 상대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판사로 일했으며 헌법재판소 사무차장,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김 교사는 이화여대 사회교육과 학·석·박사 출신으로 학교에서 ‘법과 경제연구’와 ‘실험경제반’ 등의 동아리를 운영하고 교육부 등 정부 부처·기관의 법·금융·경제 교육 과정 연구에 참여했다. 김 교사는 최근 ‘금융의 날’에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청소년이 법을 알아야 한다”며 최근 ‘법 쫌 아는 10대’라는 책을 공저했는데, 이 책에서 강조한 메시지는.
△김택수: 법관이 사건을 바라볼 때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바로 양 당사자의 말을 듣는 것이다. 사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자세이다.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그게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 먼저 한쪽 의견을 듣고 마음속에 그게 맞을 거라는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한다. 먼저 들은 이야기를 은연중에라도 믿어버리면 다음에 상대편 이야기를 들을 때 제대로 판단하기 힘들다.
△김나영: 아버지는 언제나 의심하신다.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군가 A에 관해 설명한다면 ‘정말 그럴까’,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말할까’ 라고 생각하신다. 심지어 당신의 판단도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신다. 저도 그렇게 사고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언제나 틀릴 수 있다고 보고 내일은 덜 틀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태도가 내면화되면 서로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우기면서 대립하는 일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같은 걸 보면서도 다른 걸 보는 것, 내 관심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중요한 것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청소년이 법을 알게 되면 상대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거나 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김나영: 맞는 말씀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에서 소민이 좋지 않은 친구가 있었다. 그가 잘난 척 하는 게 심하고 남을 무시하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법관이던 아버지는 그 친구에 관해 들으시더니 저한테 ‘그 친구의 이야기도 들어봤니’라고 반문하셨다. 언제나 양쪽의 입장이 완전히 다를 수 있으니 그 친구 입장도 들어보라고 하셨다.
△김택수: 누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목격자의 진술은 제각각일 수 있고 소문이나 오해, 편견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나중에 무죄라고 밝혀진 경우도 꽤 있다. 자신의 배경지식, 관점, 입장에 따라 동일한 사건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게 진실이고 전부인 줄 알면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고 갈등이 생긴다. 법 지식과 함께 유연한 관점과 보다 여유롭고 너그러운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법에 대해 편견을 갖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잘 아는 법전이나 고전작품을 예로 들어 법에 관해 설명한다면.
△김나영: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생각이든 절대적인 선과 악은 찾기 드물다. 관점을 조금만 바꿔도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함무라비 법전’하면 보통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보복하는 무시무시한 법이라고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저도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 사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법이 외려 보복을 제한하는 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내 자녀의 눈을 잃게 했다면 어땠을까. 상대방의 눈은 물론 목숨을 빼앗고 싶은 충동이 들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측면에서 함무라비 법전은 보복의 악순환을 막는 법으로 볼 수도 있다.
△김택수: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도 비슷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샤일록을 악인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그가 정말 악인일까? 안토니오는 샤일록을 수없이 ‘개’, ‘악마’라고 비하하고 바사니오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그를 유대인으로 둔갑한 악마라고 여겼다. 중세 시대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증오가 얼마나 뿌리 깊었는지 알 수 있다. 샤일록은 자신의 서러움을 “유대인은 눈이 없소? 손과 오장육부, 사지와 감각, 욕구와 감정이 없단 말이오? 우리도 당신네 기독교인들처럼 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이 상처받는다는 말이오. 유대인들은 당신들이 찔러도 피가 나지 않는 것으로 아시오?”라고 하소연했다. 샤일록은 안토니오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되 장난삼아 반환 약속을 어길 경우 살 1파운드를 떼내는 조건으로 계약하자고 제안했다. 안토니오도 이에 동의했다. 계약 당시 안토니오의 배가 어떤 상황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처음부터 샤일록이 안토니오에 대한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새로운 관점에서 베니스의 상인을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법치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데, 법에 관한 철학을 소개한다면.
△김택수: 법은 공기와 같다. 법이 없으면 살기 어렵지만 평소에는 그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법이 우리의 권리를 지켜주기에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 생활 곳곳에 스며있는 법의 소중함을 느낄 필요가 있다. 법을 공부하면서 사람들이 각기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을 알게 된다. 어떤 결정이 누구에게나 좋은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 없다는 점도 깨닫는다. 법이 추구하는 진리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어떤 결정이 언제나 옳은 진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나영: 법에 대해 알면 ‘법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거구나’ 깨닫게 될 때가 많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법 조항도 역사적으로 굉장히 치열한 투쟁의 산물인 것이 많다. 저는 법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자유’가 떠오른다.
-학교에서 법에 관한 교육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교육당국에 제안할 게 있다면.
△김택수: 법 체계 등 지식에 관한 내용도 가르쳐야 하지만 ‘법이 왜 생겨났고 왜 필요하고 왜 지켜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저마다의 법이 생겨난 이유는 바로 국민의 권리 보장과 정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나영: 권리 보장을 얘기할 때 저는 학생들에게 자유권과 사회권의 균형을 강조한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은 내 것이고 내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재산권 행사의 자유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사고로 다쳐서 장애를 가지게 돼 일할 능력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정부는 그에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 권리를 사회권이라고 한다. 사회권 보장 범위(복지)를 확대하려면 세금을 많이 거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재산권 행사의 자유가 제한된다. 따라서 자유권과 사회권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법 교육뿐 아니라 경제 교육도 중요하다. 김 교사의 경우 ‘최강의 실험경제반 아이들’, ‘경제수학, 위기의 편의점을 살려라’ 등의 책을 펴냈는데.
△김나영: 학생들은 주식 투자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한다. 이는 한방을 노린다는 위험한 얘기도 된다. 학생들이 ‘나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한다’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건물주가 되는 게 꿈이라는 학생들도 종종 본다. 하지만 돈이 없더라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이게 자본주의의 장점이다. 혁신 아이디어가 있고 그것을 구현할 수 있다면 부자가 될 수 있다. 반드시 성적이 좋아야만 부자가 되거나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희소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성과 능력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 문제를 찾고 탐구하며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학생들의 관심사를 놓고 문제를 함께 찾아 프로젝트 방식으로 수업하기도 하는 게 이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각자의 문제를 해결해가며 경제 능력을 체득하게 하고 싶다.
저는 게임 아이템에 돈을 많이 쓰는 학생들의 이야기에 착안해 사용 분야별 한도 제한을 두는 금융카드 시스템을 개발해 특허를 내기도 했다. 요즘 학생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뭘 잘하지’ 라며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찾을 겨를조차 없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배운 경제이론을 자연스레 실생활에 접목해보도록 유도한다. 학생들에게 자주 가는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음료수가 맨 안쪽에 배치된 이유를 묻고 편의점 사업 계획도 같이 짜본다. K푸드의 기운을 타고 뭘 수출할지 생각해보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도록 한다. 학생들에게 수요조사를 통해 제품 개발, 가격 확정, 환율 계산 등 경제감각을 기르도록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