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폭설

윤제림





싸락눈으로 속삭여봐야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진눈깨비로 질척여봐야 고샅길도 못 막으니까

저렇게 주먹을 부르쥐고 온몸을 떨며 오는 거다.

국밥에 덤벼봐야 표도 안 나니까

하우스를 덮고, 양조장 트럭을 덮는 거다.

떼로 몰려와 그리운 이름 소리쳐 부르는 거다.



어른 아이 모다 눈길에 굴리고 자빠뜨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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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이의 발목을 잡는 거다.

전화를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다른 세상으론,

비행기 한 대 못 뜨게 하는 거다.

철길을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내가 당신을 잘못 봤수. 탄탄한 가슴도 야무진 주먹도 없지 않았수? 바람이 어깨 떠미는 대로 슬슬 밀려가지 않으셨수? 걸핏하면 눈물만 찔끔대던 뭉게구름 아니었수? 이렇게 박력 있을 줄 몰랐다우. 덮쳐도 나 같은 너럭바위나 덮치지 온 나라 길을 끊고 차를 미끄러트릴 건 뭐요. 전신주를 쓰러트리고 하우스에서 농부의 심장 같은 딸기를 꺼낼 건 뭐요. 혼수 이불도 우리 둘 덮으면 되지 천연기념물 산양까지 덮을 건 뭐요. 크나큰 사랑 알았으니 땅속 깊이 스몄다가 봄꽃 피우고 가시우.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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