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여당이 계파 간 갈등을 여전히 드러내면서 당의 분열이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반대 당론을 세운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에서 7일 이탈표가 늘어나는가 하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폐기 후 사의를 표명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재신임 문제를 놓고도 계파 간 입장 차가 확연했다. 친한계가 수적 열세 속에 사퇴한 원내 지도부를 어떻게 메울지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8일 국민의힘에서는 추 원내대표의 재신임 여부를 두고 계파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을 보였다. 추 원내대표는 7일 표결이 이뤄진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과 김 여사 특검법을 모두 부결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국민의힘은 먼저 상정된 김 여사 특검법 재표결에는 참여하고 탄핵안 표결에는 이탈표를 우려해 불참했다.
7일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에서는 이전보다 늘어난 최소 6표의 이탈표가 나왔다. 김건희 특검법이 처음 재표결됐던 올 2월에는 사실상 이탈표가 없는 걸로 해석됐고 올 10월 두 번째 김검희 특검법 표결 때는 최소 4표의 이탈표가 나왔다. 늘어난 이탈표를 분당의 징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후 탄핵안 표결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고 추 원내대표는 직후 진행된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추 원내대표는 탄핵안 통과를 막은 뒤 사퇴하겠다는 뜻을 주변에 미리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친윤계 권성동 의원은 “혼란스러운 시기에 원내 지도부를 바꾸면 안 된다”며 재신임 안건 상정을 요청했고 ‘박수 추인’을 제안했다. 그러나 친한계 한지아 의원이 “추 원내대표로 인해 결과적으로 우리 당 의원들이 비상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며 “새로운 원내 지도부로 가야 한다”고 반대 뜻을 표명했다. 한 의원은 발언 뒤 의총장을 나갔고 이후 거수 표결이 이뤄졌다. 전체 78명 중 73명이 찬성해 추 원내대표의 재신임이 결정됐다.
의원들의 재신임에도 추 원내대표가 복귀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추 원내대표 측은 “탄핵을 놓고 당내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부결을 관철한 것만으로 역할을 충분히했다고 생각한다”며 “현재로선 재신임을 받아들일 의사가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친윤계와 중진들 사이에서는 의총에서 재신임 결정이 있었던 만큼 추 원내대표 복귀를 요청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윤상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의원총회에서 추 원내대표의 재신임안이 압도적 찬성으로 추인된 것은 당내 단합과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지금 당장 추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정책위의장과 예결위원들이 늦어진 예산안 심사에 돌입해야 한다”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추 원내대표의 복귀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만큼 친윤계 요구가 지속될 경우 계파 갈등은 한층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친한계 신지호 전략기부총장은 “비상계엄 당일에 원내 사령탑으로서 지휘는 대단히 부적절하고 잘못됐다”며 “교체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원내대표뿐 아니라 당 3역 중 한 명인 김상훈 정책위의장도 전날 한 대표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8월 한 대표는 친윤계 정점식 정책위의장 후임으로 계파색이 옅다고 분류된 김 의장을 지명한 바 있다.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와 신동욱 원내수석대변인, 박준태·조지연 원내대변인 등 원내지도부 구성원들도 일제히 사퇴했다.
한 대표 측은 새 원내지도부를 선출하는 절차와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 친한계는 20명 안팎으로 가늠되는데 대다수가 초·재선 의원이다. 통상 원내대표는 3·4선이 맡아온 만큼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을 놓고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는 모습이다. 한 대표는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회동한 후 잇따라 장동혁 수석최고위원, 정성국·주진우·박정하·한지아·박정훈 의원, 김종혁 최고위원, 신지호 부총장 등 친한계 인사들과 현안 대책 회의를 진행했다.
여권은 최악의 시나리오인 ‘분당’을 걱정하는 처지다. 실제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통과 뒤 새누리당은 둘로 쪼개진 바 있다. 당내 비주류가 친박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비박계 의원 29명이 동반 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