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현지에 진출한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투자 계획에 비상이 걸렸다.
블룸버그통신은 8일(현지 시간)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 배터리 제조 업체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일어날 일들을 우려해 진행 중인 공장 건설을 연기하거나 일시 중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올 9월 공시를 통해 제너럴모터스(GM)와 캐나다에 짓고 있는 양극재 합작 공장의 완공 일정을 연기했다고 밝혔다. 김병훈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와 관련한 트럼프의 모든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매우 중요한 문제로 생각해왔다. 정책에 변화가 생기면 전략도 수정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권 인수팀은 IRA에 기반한 차량당 최대 7500달러의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들은 최근 북미 투자를 대대적으로 늘려왔다. 배터리 3사(삼성SDI·LG에너지솔루션·SK온)는 미국에 15개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은 2022년 IRA가 발효된 이후 나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한국 배터리 업계가 계획한 미국 설비투자 규모는 540억 달러(약 77조 490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한국 기업들은 해외직접투자(FDI) 등을 통해 북미에서 2만 36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이는 어떤 다른 국가보다 많은 수준이라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전기차 수요 부진이 장기화한 가운데 배터리 3사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실적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현재까지 각각 1조 원, 2110억 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주 삼성SDI와 스텔란티스의 합작사에도 75억 달러(약 10조 5000억 원)의 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트럼프 2기에서 신설되는 정부효율부(DOGE) 공동 수장으로 임명된 비벡 라마스와미는 이 같은 결정을 겨냥해 “특별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경고를 내놓았다. 케니 김 SNE리서치 CEO는 “기업들이 아직 아무리 조치를 하지 않았지만 트럼프가 전기차에 대한 정부 인센티브를 어느 정도까지 삭감할 것인지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배터리 공장이 대부분 공화당이 장악한 주(州)에 위치한 만큼 보조금이 큰 폭으로 삭감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SK온 공장 3곳이 있는 조지아주의 팻 윌슨 경제개발국장은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소비 시장”이라며 “한국 기업들은 바이든 행정부 이전부터 그 사실을 알았고 차기 행정부에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