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물가는 1~2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주는 만큼 내년 물가상승률이 다시 2%대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고환율 흐름 속에 물가가 다시 불안해지면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속도는 늦춰질 수밖에 없어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11월 국내 공급물가지수는 10월(123.47)보다 0.6% 오른 124.15로 집계됐다. 올 4월(1%)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원재료(1.8%)와 중간재(0.6%), 최종재(0.1%) 모두 오름세를 나타냈다. 공급물가는 생산자물가와 수입물가를 결합해 산출하는데 환율 상승으로 수입물가가 크게 오른 것이 원인으로 풀이된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이후 1400원 초중반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원재료의 경우 국내 출하 물가지수는 2.6% 내렸지만 수입물가지수가 3.1% 상승했다”며 “중간재는 국내 출하와 수입물가지수가 각각 0.3%, 1.9% 올랐다”고 설명했다.
생산자물가지수는 환율 상승과 더불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여파가 크게 작용했다. 11월 생산자물가지수를 항목별로 살펴보면 농림수산품은 전월보다 3.6% 내렸지만 공산품(0.1%)과 전력·가스·수도 및 폐기물(2.3%)은 각각 상승했다. 주요 품목을 보면 배추(-42.3%), 상추(-64.1%), 돼지고기(-4.1%), 닭고기(-5.8%) 등 농축산물은 대거 내림세를 보였다. 또 휴대용 전화기(-5.7%), 국내 항공 여객(-5.2%), 공업계기(-4.6%), 철강 절단품(-1%) 등도 전월보다 하락했다. 하지만 산업용 전력(7.5%)이 큰 폭으로 상승했고 에틸렌(4.8%), 경유(4.1%), 온라인콘텐츠서비스(0.4%) 등도 오름세를 나타냈다. 산업용 전력의 상승은 정부와 한국전력의 전기요금 인상 결정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10월 산업용(갑) 전기요금을 164.8원에서 173.3원으로 5.2%, 산업용(을) 전기요금을 1㎾h(킬로와트시)당 165.8원에서 182.7원으로 10.2% 인상한다고 밝혔다.
생산자물가가 오르면서 내년 이후 소비자물가도 2%대 이상으로 다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월 1.6%를 기록한 후 10월(1.3%), 11월(1.5%) 등 3개월 연속 1%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환율 불안 등으로 다시 2%대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은은 최근 물가안정 목표 운영 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내수가 완만하게 개선되는 가운데 환율 상승, 공공요금 인상 압력 등이 상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와 관련해 “현재 1%대로 낮아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내년에는 목표 수준인 2% 부근에서 안정될 것”이라며 “물가의 전망 경로상에 대통령 탄핵 진행 과정 등 많은 불확실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물가 상승이 가시화하면 한은의 통화정책 완화에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내수 침체가 여전한 가운데 수출 둔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한국 경제의 내년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한은이 금리 인하 등으로 내수 진작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환율과 더불어 물가까지 불안하면 통화정책 완화가 어려워진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높아진 환율 수준과 더불어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점을 확인할 수 있다”며 “여러 변수로 한은이 예상만큼 빨리 통화정책을 완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