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현지시간) 독일 작센안할트주 마그데부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이 돌진해 5명이 사망했다. 용의자가 평소 독일의 무슬림 수용·이민 정책을 반대해 온 ‘반 이슬람주의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번 사건은 내년 2월 총선과 맞물린 정치 이슈로 비화하는 분위기다.
21일 로이터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으로 현재까지 5명이 숨지고 200명 이상 다쳤으며 부상자 가운데 41명은 중상이라고 작센안할트주 당국이 밝혔다. 경찰은 전날 오후 7시께 BMW SUV(스포츠유틸리티차)를 몰고 인파 속으로 돌진한 50세 남성을 현장 인근 트램 정류장에서 체포하고 그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범행 경위와 동기를 조사 중이다. 마그데부르크 검찰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난민에 대한 처우에 불만을 품고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용의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전문의 수련을 받다가 2006년 독일로 이주한 뒤 2016년 영주권을 얻고 심리치료 의사로 일해왔다. 그는 사우디 당국으로부터 박해받는 여성들의 망명을 돕는 활동을 하면서 반이슬람 성향을 보였다. 그는 모국 정부의 여성 탄압과 감시를 비판하면서 “독일이 국내외에서 사우디 출신 망명자들을 사냥하며 삶을 파괴한다”, “독일이 유럽을 이슬람화한다” 등의 글을 X에 올리기도 했다. 특히 무슬림 이민에 반대하면서 이들을 대거 받아들인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독일 정치권은 이번 사건이 2월 조기 총선을 앞두고 발생했다는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슬림 이민에 반대하는 등 이민자 단속 강화를 주장하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현재 여론조사에서 보수 야당에 이어 2위를 기록하며 내년 총선 승리를 노리고 있다. 올해 치러진 지방선거 때도 동부 튀링겐주에서 1위를 차지했고, 다른 두 인접 지역에서 2위에 오르며 선전했다. AfD는 통제되지 않은 이민이 독일 거리의 폭력 범죄 급증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며 지지세를 넓혀 왔고, 이번 크리스마스 마켓 테러 용의자도 AfD에 지지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AfD가 사건 발생 다음 날 추모 집회 참여를 호소하면서 테러 현장이 정치 선전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참가자들은 현장에 극우와 연관된 신 이교도 상징물을 착용하고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낸시 페저 내무장관은 현장을 방문해 “이번 사건이 극우세력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집회의 자유가 있는 만큼 조직적으로 보이는 모임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FT는 “이번 사건은 11월 올라프 숄츠 총리의 3당 연립정부가 붕괴된 이후 심각한 경제 침체와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친 시기에 발생해 독일 사회의 불안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