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 3위 자동차 업체인 혼다와 닛산이 23일(현지 시각) 내년 6월 합병을 위한 협상을 본격화했다. 합병 회사의 경영 주도권은 혼다가 갖기로 한 가운데 두 회사의 합병에 따른 시너지가 크지 않아 혼다만 피해를 볼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혼다와 닛산은 이날 이사회를 열어 본격적인 합병 논의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 2026년 8월까지 지주 회사를 설립하고 지주 회사가 각 회사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합병을 진행한다. 지주회사를 설립과 동시에 상장시키고 기존 두 회사는 상장 폐지하는 방침을 정했다. 궁극적으로는 닛산이 최대주주인 미쓰비시 자동차도 지주회사에 편입시킬 예정이다.
경영 주도권은 닛산(약 1조 3000억 엔)보다 시총이 4배 이상 큰 혼다(약 5조 8000억 엔)가 맡는다. 지주회사의 회장도 혼다 이사진에서 선출하고, 지주 회사의 사내외 이사 역시 혼다가 과반을 지명할 방침이다. 양 측은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내년 6월까지 협상을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 이날 오전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과 우치다 마코토 닛산 사장은 함께 일본 경제산업성을 찾아 합병 협의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앞서 닛케이는 지난 18일 혼다와 닛산이 합병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한 바 있다. 세계 자동차 판매 7, 8위 기업인 혼다와 닛산이 합병하면 현대차를 제치고 도요타(1123만 대)와 폭스바겐(923만 대)에 이어 총 판매대수가 813만 대에 이르는 세계 3위 자동차업체로 올라서게 된다. 2022년부터 계속된 도요타그룹, 폴크스바겐그룹, 현대차그룹의 1~3위 구도가 깨지는 것이다.
한 때 일본 자동차 기술의 상징이었던 혼다와 닛산은 전기차, 자율 주행 등 자동차 시장이 급변하는 가운데 중국에서의 판매 급감, 전기차 전환 지연, 동남아 시장 매출 감소 등 위기를 겪었다. 특히 닛산은 최근 독자기술 개발이 늦어지고 성장 동력이 사라지면서 지난달 9000여개 일자리를 없애고 생산능력 20%를 감축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혼다와 닛산은 합병을 통한 개발과 생산 비용 효율화를 기대하고 있다. 막대한 개발 비용이 드는 전기차 개발 비용을 분담하고 연구개발 기능의 통합이나 생산 시설 효율화도 함께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동화에 크게 뒤처진 혼다와 닛산이 경영 통합만으로는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시너지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의문이 제기된다.
차종, 판매처 뿐 아니라 양 사의 공급망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이날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혼다와 닛산의 거래처는 약 3만 2307개로 이 중 3분의 1 정도인 9200여개사가 혼다와 닛산 모두와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혼다가 닛산에 자금을 대는 꼴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3분기 영업이익이 급감한 닛산은 지난달 전 세계 생산 능력을 20% 감축하고 전체 인력의 10% 수준인 9000명의 직원을 감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닛산과 악연인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도 이날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합병을 작심 비판했다. 곤 회장은 “양 사가 같은 분야에서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어 비즈니스 상의 보완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업의 관점이 아니라 정치적 관점에서는 말이 된다”며 “실적을 신경쓰지 않고 (일본 정부가) 기업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닛산은 더 취약해진다”며 일본 정부가 혼다를 압박해 이번 합병 거래에 나서게 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양사 합병과 관련해 “일본 내 약세 기업 간의 방어적 합병”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999년 당시 경영난을 겪었던 닛산은 곤 전 회장의 주도로 구조조정을 통해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이후 르노와 닛산 간 경영 갈등이 악화했고 곤 전 회장은 2018년 보수 축소 신고 혐의로 일본에서 체포됐다가 보석 석방됐다. 여기에서도 일본 정부가 프랑스의 자국 자동차 산업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수사 공작을 벌였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2019년 12월 당시 가택 연금 중이었던 곤 전 회장은 악기 상자에 몸을 숨겨 일본을 극적으로 탈출했다. 그는 현재 고향인 레바논에서 거주하고 있는 곤 전 회장은 명예훼손 실추에 따른 10억달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닛산과 법적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