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전략 수립시 외환시장에 미치는 거시경제적 영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이 해외투자의 ‘큰 손’이 된 만큼 원화 절하를 유발하는 주체가 됐다는 배경에서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열린 한국국제경제학회 동계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규모가 커져 외환시장 영향력이 크게 증대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 매각 시 원화 절상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우려했다. 그는 "앞으로 고령화 진전과 연금수급자 증가로 기금감소기가 도래하면 해외자산 매각에 따른 국민연금의 외환 순매도가 원화 절상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총재는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라도 국민연금의 원화 표시 방법, 환 헤지 전략 등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연기금이 수익 표시를 원화로 하다 보니 환율 절하가 되면 수익성이 커지는 것 같지만, 실제 자산을 팔 때에 대해서는 환율을 절상시키고, 이렇게 되면 원화 수익률은 낮아질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국민연금도 환율이 이례적으로 상승한 시기에는 환 헤지를 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 및 수익 측면에서 유리하므로 외환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거시적인 안목에서 전략을 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창용 총재는 또 일각의 지적과 달리 한국의 외환보유액 수준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적정 외환 보유액 수준에 보면 우리(한국)가 조금 밑에 있으니까 불안한 거 아니냐 이런 얘기가 있는데 그건 금융 신흥국에 대해서 적용하는 정량평가 기준"이라고 짚었다. 이어 "IMF가 2023년부터는 한국을 더 이상 정량평가 대상국으로 보지 않고 있다"면서 “IMF는 일부 시장성숙국에 한해 스트레스 테스트, 전통적인 비율 지표들을 활용해 외환보유액 적정성에 대해 정성평가를 하는데, IMF 내부에서 이 정성평가로는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굉장히 충분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환율 안정을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의 통화스와프는 쉽게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준과의 통화 스와프를 위해선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국제금융시장의 글로벌 달러 유동성 부족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신흥국 경제 충격 △충격으로 인한 미국 경제의 부담을 포함한 세 가지다. 이 총재는 “2022년 하반기 상황은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며 “글로벌 달러 유동성 경색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