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전력망 대란에 서울대 같은 주요 대학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설립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을 위한 변전소 추가 설치 공사에는 최소 수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돼 국내 대학의 ‘연구 공백’도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3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대 대학본부는 2021년 한국전력에 AI와 반도체 설비 관련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추가 전력 공급을 요청했지만 한전이 설비 부족 문제로 난색을 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서울대가 공급을 요청한 용량은 25㎿에 달한다.
현재 한전은 경기 남부에 345㎸ 변전소 3개를 추가 설치해 서울대와 숭실대 등에 데이터센터용 전력을 공급할 방침이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변전소 착공에 들어간다.
문제는 시간이다. 변전소 신설 기간이 통상 6년에서 8년 정도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345㎸ 변전소 준공은 2030년이 넘어야 가능하다. 한전의 관계자는 “설비 건설 공정 시간을 고려하면 345㎸ 변전소 준공 목표는 2030년으로 보고 있다”며 “인허가 기간과 민원 등을 고려하면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변전소 설치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어려워져 서울 주요 대학의 기초연구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서울대에서 빅데이터 AI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조성준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기존에 있는 전산센터인 정보화본부에서 데이터센터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그래픽처리장치(GPU) 구동에 충분하지 않다”며 “서울대 전체 차원에서 전기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대 공대 교수도 “AI 기초연구를 하려고 해도 GPU 구동이 잘 안 돼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대한민국이 경제 규모로 10위권인데 전기 부족 때문에 AI 연구를 못하는 게 말이 되냐”고 토로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상황이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 강북권 대학의 전기 공급을 책임지는 한전 서울본부는 “우리도 서울 강남과 여건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망 자체가 전력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어 학교 측에서 추가 전기 공급 요청이 들어와도 (공급이)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한전 서울본부도 송전망 추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공사 착공은 시작조차 못한 상황이다.
전국 대학교 가운데 최신 고성능 GPU를 활용한 AI 데이터센터를 갖추고 있는 대학은 연세대가 유일하다. 연세대는 2020년부터 AI 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인공지능 모델을 설계하고 검증할 수 있는 AI 데이터센터는 AI 시스템과 인공지능 분야의 연구개발을 위해 필수적으로 설치돼야 하는 인공지능 인프라 중 하나다.
특히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에 비해 전력 소비량이 많다. 슈나이더일렉트릭에 따르면 2028년까지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연평균 증가율은 11% 수준인데 반해 AI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는 연평균 26~36%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조성배 연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최근에 성공하는 AI는 GPU 컴퓨터 여러 개를 같이 써야 해 전력이 매우 많이 필요하다”며 “전력에 대한 생각 없이 컴퓨터만 구입했던 기관들은 전력선을 끌어오는 게 굉장히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고려하면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의 처리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26일 법안 소위를 열고 전력망 특별법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 등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연내 처리 가능성은 아직 안갯속이다. 전력망 특별법은 AI와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해 국가 전력망 확충 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뼈대로 한다. 전력망법이 통과되면 지역 민원과 지방자치단체 반발 등에 변전소 신증설과 전력망 구축이 늦어지는 것을 막고 첨단산업 지원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