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상법 개정 땐 기업 혼란 가중” 산업계 호소 외면 말라


계엄·탄핵 정국의 혼돈으로 경제 살리기 입법이 중단된 가운데 거대 야당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 등을 밀어붙이자 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산업연합포럼은 23일 한국기계산업진흥회·한국바이오협회 등 18개 경제단체와 함께 “상법 개정안과 상장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 제정안이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고 기업과 주주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호소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9일 국회 토론회와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를 거쳐 내년 초까지 이 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방침이다.



산업계는 “현행법상으로도 상법상 주주대표소송, 제3자에 대한 책임, 배임죄 등 이사의 경영상 행위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존재한다”며 “특히 업무상 배임 신고 건수는 연 2000건에 달할 정도로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총주주’ 등으로 확대되면 그러잖아도 쏟아지고 있는 업무상 배임 신고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실제로 이 법안이 통과돼 시행될 경우 최고경영자(CEO)는 장기적 안목이 아니라 단기 차익이나 배당을 원하는 주주들의 요구에 따라 안정적 경영에만 몰두해 기업 경쟁력 강화를 뒷전으로 미루게 된다. 미국 역시 이를 우려해 모범회사법에서 이사의 의무 대상을 ‘회사’로 한정했고 독일·일본 등도 비슷한 제한만 두고 있다. 또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투기자본의 공격에 악용될 소지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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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밸류업 인센티브 정책과 함께 자본시장법에 ‘주주 보호 원칙’을 두는 핀셋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근 “합리적으로 핀셋 규제를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이뤄지면 굳이 상법 개정을 안 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는 가운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리스크와 국내 정치 불안까지 겹쳐 경제 위기 증폭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거대 야당은 경기 침체의 터널에서 분투하고 있는 기업들의 호소를 경청하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족쇄를 더 채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여야는 26일 구성되는 여야정 협의체에서 의견을 모아 반도체특별법·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 등 경제 살리기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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