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3월 24일, 최윤범 당시 고려아연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재선임된 다음 날 열린 고려아연 이사회에서는 해외 지주회사인 페달포인트를 대상으로 대규모 출자를 결의했다. 미국 전자폐기물 재활용업체 이그니오 홀딩스를 인수하기 위한 목적이다. 당시 최 부회장은 사내이사 재선임 일성으로 “신성장동력을 키우겠다”며 포부를 밝혔고 ‘트로이카 드라이브’란 이름의 야심 찬 중장기 성장전략을 처음 공개했다. 이그니오 인수가 트로이카 드라이브의 사실상 첫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그러나 당시 이그니오 인수 거래를 인수합병(M&A) 전문가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통상적인 기업 M&A 거래의 틀을 벗어난 수상한 정황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가장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은 거래 구조다. 고려아연이 해외 자회사인 페달포인트에 출자하고, 출자 받은 페달포인트가 주체가 되어 이그니오를 인수하는 구조는 문제가 없다. 거래를 두 번에 걸쳐 구주와 신주를 섞어 순차로 진행한 것도 가치 산정 문제를 별개로 본다면 이상하진 않다고 여길 수 있다.
문제는 거래 상대방인 매도자 측이다. 페달포인트가 인수한 대상은 이그니오홀딩스 신주, 구주 지분과 MCC 사업 등 2가지였다. 페달포인트는 2022년 7월 이그니오 홀딩스 구주와 신주 지분 75.5%를 인수하면서 MCC 사업을 무상 양도 받았고, 같은 해 11월 잔여 구주 지분을 인수하는 2단계 과정을 거쳤다.
당시 이그니오의 최대주주는 지분 47.5%를 보유한 MCC NFT 홀딩스(MCC)였다. 그 외 주요주주로는 Windchime Limited(5%), PCT Igneo Investor,LLC(38.2%), 타르사디아 그룹(The Tarsadia Group,LLC, 5.7%) 정도다. 투자펀드들이 더 있긴 하지만 보유 지분율이 대부분 1% 미만에 그쳤다.
여기서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은 왜 거래의 핵심 가치를 가진 MCC 사업을 이그니오에 무상으로 넘기고, 이그니오 구주 지분 매각 가치만 인정받은 것일까 하는 대목이다. 이그니오와 MCC 사업을 뭉뚱그려 보면 전자폐기물 원료 구매와 공급, 임가공, 소성품 판매 사업으로 세분화되는데, 이 사업들을 MCC 단독으로 해오다 2021년 이그니오를 별도 설립해 임가공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사업의 핵심 역량은 원료 구매 공급과 판매 부문을 가진 MCC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아연의 최근 기업설명회(IR) 자료에 따르면 이그니오의 2021년 매출액이 210만 달러에 그친데 반해, MCC는 4690만 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해 상각전영업이익(EBITDA)도 MCC가 630만달러인데 반해, 이그니오는 오히려 33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MCC 대주주 입장이라면 이그니오 지분 거래와 사업 양수도 거래를 각각 따로 진행하는 편이 유리하다. 단순 위탁 임가공이 사업의 전부인 이그니오 가치가 미미한 반면 MCC 사업이 더 가치가 높은데, MCC 사업을 이그니오에 무상 양도하면서 이그니오 지분 매각 가치만 보상받았다는 것은 결국 마땅히 독식해야 할 MCC 매각 가치를 이그니오의 다른 주주들과 나눠가진 꼴이다.
이 다른 주주에는 이그니오 설립 초기부터 주요주주로 참여한 PCT Igneo Investor, LLC 등이 포함돼 있는데, 이그니오 설립 후 불과 1년 반 만에 원금 대비 아홉 배가 넘는 차익을 번 전환사채(CB)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투자 원금의 수십 배에 달하는 차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고려아연 측 해명에 따르면 이그니오 주요주주의 대부분이 CB 투자로 잭팟을 터뜨린 타르사디아 그룹 계열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 타르사디아는 이그니오 1대주주인 MCC의 40% 대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타르사디아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MCC의 다른 주주들은 동의하기 어려운 이 같은 거래 구조에 고려아연이 왜 응했는지 전문가들은 의구심을 품는다.
이그니오를 인수하기 위해 비밀유지계약(NDA)을 맺은 시점이 이그니오 설립 후 불과 5개월 여 만인 2021년 7월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한 대목이다. 고려아연의 이그니오 인수 논의가 설립 직후부터 개시된 것으로 보이며, 특히 통상적이지 않은 거래 구조를 설계하는 데에도 고려아연이 초기부터 관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M&A업계 한 전문가는 26일 “M&A 거래의 구조가 통상적이지 않다면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숨어있을 것”이라며 “고려아연의 이그니오 인수 구조를 들여다보면 타르사디아 그룹과 고려아연이 대체 어떤 관계인 지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